정전 60주년 기획 '6ㆍ25 순교자 믿음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성당' - ⑥ 춘천 죽림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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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은 한국 가톨릭 미술의 보고라는 평을 받을 만큼 아름다운 성당이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
성역화 사업이 한창인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은 1938년부터 강원도 지역을 선교하다 6ㆍ25전쟁 때 순교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묻혀 있는 성지이다. 또 성당 안팎 구석구석 아름다운 성미술품으로 꾸며져 '한국 가톨릭 미술의 보고(寶庫)''전례 공간 구성의 교과서'라는 평을 듣고 있다.
1949년 4월 5일 기공해 1956년 6월 8일 봉헌한 죽림동 주교좌성당은 내부에 줄지어 늘어선 기둥이 없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적 로마네스크 양식 석조 건축물이다. 죽림동성당이 대대적 보수를 거쳐 지금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은 1998년 9월이다.
당시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미술가 20여 명이 성미술품으로 춘천 약사리 고개 정상에 있는 성전을 아름답게 꾸몄다. 성당 종탑 십자가는 서울 명동 주교좌성당의 옛 십자가와 모양이 똑같다. 한 뿌리에서 나온 교구임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성당 청동 문 위쪽에 장식된 아일랜드풍 십자가는 반세기 넘게 강원도 일대에 복음을 선포하고 순교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업적을 새긴 문양이다. 또 문 오른쪽에 있는 예수성심상은 춘천교구와 죽림동본당의 주보임을 드러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성당에도 아픈 상처와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거의 한 해 동안 돌로 이벽을 다 쌓고 동판 지붕까지 덮은 후 내부 공사에 들어갈 참에 6ㆍ25전쟁이 터졌다. 춘천에는 전쟁 발발 이튿날인 6월 26일부터 시내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2일 인민군들은 공포를 쏘며 성당에 난입, 신자들과 함께 주일 미사를 봉헌하던 초대 춘천교구장 구 퀸란 토마스 몬시뇰과 캐나반 신부를 체포 연행했다. 두 성직자는 교황사절 번 주교와 동료 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평안북도 강제 수용소까지 '죽음의 행진'을 했고, 캐나반 신부는 끝내 순교했다. 교구장 퀸란 몬시뇰과 조 필립보 신부는 34개월간의 포로 생활 끝에 1953년 4월 기적같이 생환했다. 성당 건축물도 1951년 5월 공습을 받아 한쪽 벽과 부속건물이 대파했다.
1951년 8월 전란이 한창인데도 죽림동성당 복구작업은 미군과 교황청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교황청 지원을 받게 된 것은 생환한 퀸란 몬시뇰이 1953부터 1957년까지 주한 교황사절 서리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퀸란 몬시뇰은 1955년 춘천이 지목구에서 대목구로 승격하면서 주교품을 받았다.
죽림동성당 뒤편에는 성직자 묘역이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이곳에는 교구장 퀸란 몬시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성당에 남아 신자들을 돌보고 부상자를 치료하다가 순교한 아일랜드 출신 소양로본당 주임 콜리어 신부와 삼척본당 주임 맥긴 신부, 묵호본당 주임 레일리 신부의 묘소가 있다. 또 죽음의 행진 고초를 겪었던 퀸란 주교도 안장돼 있다. 성직자 묘역에는 이들 순교자를 현양하고 남북한의 통일을 염원하는 높이 5m의 나무 십자가가 우뚝 서있다. 이 나무 십자가는 2000년 대희년 6월25일 철원군 월정리역 분단 현장에서 춘천교구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를 열 때 설치한 제단 십자가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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