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4월 25일 춘천지목구가 경성대목구에서 분리․설정되면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사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광주지목구장 오웬 맥폴린(Owen McPolin) 신부가 초대지목구장을 겸임하였으나 임지사목(臨地司牧)은 하지 못하였다. 1940년 퀸란(Thomas F. Quinlan) 신부가 제2대 지목구장이 되었는데 당시 본당은 11개였으며, 신자 수는 약 9,000여명이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퀸란 지목구장을 비롯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사제들이 연금되면서 원활한 사목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춘천지목구장으로 복귀한 퀸란 신부는 그동안 침체되었던 지목구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본당을 설립하면서 교세를 확장하였다. 1948년 6월 묵호를 시작으로 홍천 물구비, 삼척 성내동, 소양로, 동명동 본당 등 1965년 3월 22일 원주교구 분리 이전까지 19개 본당을 설립하면서 교세를 확장해나갔다.
1969년 5월 한국천주교회의 관할구역에 재조정되면서 춘천교구내 횡성군과 평창군의 평창면, 방림면, 미탄면, 대화면이 원주교구로 편입되었고, 포천군과 가평군의 포천, 청평, 가평 본당이 춘천교구에 편입되었다.
교구 설정 당시부터 춘천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퀸란 주교와 박 토마스 주교를 비롯한 선교사제들은 묵호의 남호고등공민학교, 강릉 성심중학교를 설립하고, 춘천 성심여자대학교 등을 유치하는 등 교육 선교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한국전쟁 직후 열악한 의료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1955년 11월 춘천의 성 골롬반의원을 시작으로 삼척 성 요셉의원, 강릉 갈바리의원, 포천 평화의 모친 의원을 개원하여 무의촌 순회 진료 등 지역 의료 환경을 개선하였으며, ‘행복한 가정 운동’및 가정 호스피스 활동을 통한 의료선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문화가 다르고 언어적 소통도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춘천교구에서 사목하는 55년 동안 신앙 안에서 신자들과 하나되어 41개 본당을 설립하며 교세를 확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