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랑 바이러스에 감염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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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3주일 천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조정래(야고보)ㆍ조순옥(메히틸다)씨, 김현준 신부, 임경옥(글로리아)씨, 최은진(아녜스)양.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
"지금 천사일기를 쓰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나는 평소 고마운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살았는지, 그리고 나의 이웃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천사일기 224호, 김동호 베르나르도) 춘천교구 강릉 임당동본당(주임 김현준 신부)에는 주일미사가 끝날 무렵 천사를 발표하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 신자들 사이에 일순간 가벼운 긴장감이 감돈다. 12월 13일 교중미사를 마무리할 즈음이다. "오늘의 천사는 조순옥 메히틸다 자매님입니다." 마침내 김현준 주임신부가 천사를 발표하자 신자들 얼굴에 배어있던 옅은 긴장감은 사라지고 미소가 가득해진다. 2008년 10월 시작된 '천사 닮기 운동'을 통해 천사로 다시 태어난 신자가 어느덧 250명 가까이 된다. 김 신부는 천사로 선정된 신자에게 가장 아끼는 만년필로 정성스레 쓴 천사편지와 천사금 4000원을 전달한다. 김 신부는 매주 다른 내용을 담은 편지를 쓴다. 처음에는 천사 한 명 한 명에게 다른 내용의 편지를 썼지만, 지금은 매주 한 장의 편지를 쓰고 복사해 그 주의 천사들에게 전달한다. 보통 정성으로는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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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신부는 천사들을 위해 매주 다른 내용이 담긴 편지를 쓴다. 사진은 김 신부가 쓴 천사편지와 천사금 4천원. 김 신부의 책상 서랍에는 천사를 기다리는 빳빳한 1000원짜리 지폐 100여 장이 항상 준비돼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
다양한 내용이 담긴 천사편지는 언제나 "천사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 천사금으로 이웃을 돌아보고, 착한 일 하시고 천사일기를 다음 목요일까지 사무실에 제출해주세요"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천사가 된 신자는 천사금으로 천사활동(선행)을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천사일기'를 쓴다. 천사들의 일기는 '헌소매'에 실려 모든 신자들이 볼 수 있다. 헌소매는 본당이 매주 발행하는 소식지로 '변함없는 헌신, 생각과 말이 통하는 소통, 존경받을 수 있는 매력'의 줄임말이다. 천사금 4000원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거꾸로 읽으면 '원천사'다. 김 신부는 "모든 사람은 천사의 마음을 갖고 태어나는 '원래 천사'라고 할 수 있다"면서 "신자들이 갖고 있는 천사의 마음씨를 깨워주기 위해 천사닮기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천사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은 없다. 김 신부는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 중 임의로 한 명을 천사로 선정한다. 김 신부가 거의 모든 신자 이름을 외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천사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부담을 느끼는 신자가 적지 않았다. 230번째 천사 임경옥(글로리아)씨는 "자신이 천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또 천사일기까지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신자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른 천사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천사일기를 통해 알게 되면서 이제는 천사가 되면 신자들이 '올 게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227번째 천사 조정래(야고보)씨는 홀몸노인을 방문해 전기선, 수도꼭지 등을 수리했고 임경옥씨는 음료수를 사들고 직장 근처 노인정을 방문해 어르신들 말벗 노릇을 톡톡히 했다. 231번째 천사 최은진(아녜스, 중3)양은 추운 날에도 아파트를 늘 깨끗이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에게 간식을 사 드렸다. 천사금으로 우표를 구입해 냉담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시 함께 성당에 나가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학생, 김 신부에게 받은 천사편지를 복사해 천사금과 함께 많은 이웃들에게 전달해 사랑의 밀알을 퍼뜨린 신자 등 천사닮기운동이 시작된 후 임당동본당 신자들이 실천한 천사활동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천사활동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번 선행에 맛들인 신자들 중 열에 아홉은 천사활동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봉사를 한다. 천사금에 본인이 돈을 더 보태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혼자 활동하기는 쑥스러워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사랑나눔 활동을 하는 천사들도 많다. 조정래씨는 "평소에 남을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는데 천사활동을 통해 첫 단추를 끼운 기분"이라며 "지속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임당동본당에서는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부터 70~80대 어르신까지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다. 지난 달에는 할머니 네 분이 천사로 선정된 주가 있었는데 김 신부와 신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활동을 열심히 했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어르신들은 종이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천사일기를 제출한다. 역사적인 1호 천사인 최숙희(마리아)씨는 자부심이 남다르다. 최씨는 천사활동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빈곤국가 어린이를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최씨는 "처음 천사가 됐을 땐 부담이 많이 됐지만 천사활동을 하고 난 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면서 "천사가 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활동하길 바란다"고 후배 천사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신부는 "천사가 된 신자들은 먼저 천사활동을 한 신자들에게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지 묻는다"면서 "신자들 간 대화가 많이 이뤄지는 것이 천사닮기운동의 큰 성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천사일기를 통해 신자들이 다른 신자에게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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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임당동본당에서 온 천사랍니다." 230호 천사 임경옥(글로리아)씨가 노인정을 찾아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
지난 12월 16일 임경옥씨가 천사활동을 하는 노인정에 동행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 어르신들이 먼저 알아보고 환한 미소로 임씨를 맞아줬다. 임씨는 어르신들에게 귤도 까 드리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천사 역할을 했다. 천사활동을 마치고 노인정을 나서는 임씨 등 뒤로 어르신들의 "천사 아줌마 잘 가~"라는 정겨운 인사가 들려왔다. 천사닮기운동은 새해에도 이어져 본당 1400여 명 신자들이 모두 천사가 될 때까지 계속된다. 임당동본당 천사들이 전하는 사랑 바이러스도 계속해서 곳곳에 퍼질 예정이다.
임영선 기자
2010. 01. 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