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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일보[도민시론┃종교] 잊혀가는 접촉지대, 그리고 인격적 연대의 회복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5-09-17 조회수 : 41

[도민시론┃종교] 잊혀가는 접촉지대, 그리고 인격적 연대의 회복

▲ 김선류 신부·천주교 춘천교구 가정생명환경부 담당

▲ 김선류 신부·천주교 춘천교구 가정생명환경부 담당

기술 중심주의 시대에 우리는 수많은 연결의 기회와 다양한 소통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금 고립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합니다. 기술의 연결은 허구적이고 꾸며진 세상을 보여주며, 비교와 경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실을 마주하려 밖으로 나와도 직접적인 소통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져 다시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드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립감을 이용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는 중요한 삶의 지혜를 전해줍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 다른 피조물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 만남과 연결 속에서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황께서는 이를 ‘접촉지대’라는 개념으로 표현했습니다. 인간과 피조물이 맞닿아 생명이 교류하고 하느님의 창조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생태학의 가장자리 효과는 이 접촉지대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서식지가 만나는 경계, 숲과 초원, 강과 육지, 바다와 갯벌의 가장자리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모여들고, 생명이 풍요롭게 번성합니다. 불안정하고 위험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과 활력이 피어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대, 문화, 가치관이 충돌하는 순간은 불편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이해와 성숙, 관계의 깊이가 생겨납니다. 이를 인격주의 생명윤리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보다 의미가 한층 분명해집니다. 인격주의는 인간을 단순한 개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엄을 지니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접촉지대와 가장자리는 인간이 자기 중심성을 넘어 인격적 성숙과 책임을 배우는 자리가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러한 접촉지대와 가장자리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 개발로 사라져가는 공원과 강변, 숲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접촉지대의 상징입니다. 자연의 생명을 느끼고, 환경을 보호할 책임을 배우게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이주민과 사회적 약자를 만나는 자리 역시 접촉지대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 만남 속에서 연대와 공감이 자라납니다.

우리는 접촉지대를 마주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접촉지대를 풍요롭게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소비와 선택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음식물 낭비를 줄이고, 하천과 산림을 보하는 것이 사례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이주민, 난민, 소외된 이웃과 만나는 경험을 통해, 차이를 넘어 존엄과 연대를 배우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신앙적 삶에서도 의심과 믿음, 기쁨과 슬픔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성장합니다. 신앙과 일상의 경계에서, 우리는 작은 선택을 통해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결국 접촉지대와 가장자리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생명이 흐르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인격으로 성장하며, 책임과 연대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접촉지대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풍요와 은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돌아봐야 할 질문은 분명합니다. 내 삶의 접촉지대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가. 불편함과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가. 관계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선택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성찰을 넘어, 우리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가 우리를 고립시키고 관계를 약화시키는 가운데, 접촉지대와 가장자리는 연대와 생명의 풍요를 회복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작은 만남과 선택 속에서 접촉지대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


기사원문보기: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2004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