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원전에 대한 재검토 필요하다고 밝혀
- '원자력 발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 특별 기고 -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경향잡지 7월호에 특별기고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이란 글에서 원자력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을 다시 수립해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하였다.
□ 강주교는 기고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회칙 ‘진리 안의 사랑’을 인용하여,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가 계속해서 이 땅을 일구며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땅을 보존하여 물려줄 막중한 의무가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 강주교는 ‘원자력 발전이 과연 안전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동안 원자력에 관해서는 전문지식이 전제되는 분야이기에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그 의견에 따르면 된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원자력발전소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관계되고 인간의 기본 생존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재앙으로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 원전 사고로 인해 발생한 냉각수의 오염은 해양 사고로 이어져 수습할 수 없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며, 방사성 폐기물을 지하 보관을 하는 경우에도 지하수 오염을 피할 수 없고 지진에도 취약하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폐기할 때도 오랜 기간이 걸리는 등 원전은 클린 에너지, 그린 에너지가 아닌 적색 에너지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정도로 크기 때문에 원전을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라 해왔던 것은 잘못이라는 점도 지적하였다. 또한 강주교는 방사능이 누출되면 반영구적으로 농축되어 쌓이게 되며, 먹이사슬을 통해 인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지만 이것을 차단하거나 어떤 기술로도 통제가 불가능한 대재앙임을 분명히 하였다. □ 강주교는 또한 ‘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이며, 인간은 이를 보호하고 온전히 지켜나갈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분명히 하고, 원전으로 인해 지하의 토양과 지하수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몇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와 인류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하고 이제는 원자력 발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다른 길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래는 기고문 전문이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천주교 제주교구장) 얼마 전에 일본 동북지역 지진, 쓰나미 피해지역에 다녀왔다. 후쿠시마 지역을 신칸센 열차를 타고 지나면서 무엇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길거리에 행인이 아무도 안 보였기 때문이다. 신칸센이 통과하는 후쿠시마 시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가 위험지역으로 대피를 명령한 20킬로미터와는 상당히 먼 거리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외출을 일체 삼가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과 방사능 누출 사고는 현재 진행형이고 언제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정부도, 전력회사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최악의 재앙이다.
원자력 발전이 안전할까? 우리는 대체로 원전이 안전한 줄 알고 지내왔다. 원자력이 워낙 전문분야이고 이에 대하여 각국의 전문가들은 안전하다고 보증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원자력의 안전에 대하여 심각한 재검토 논란이 일고 있다. 2006년 일본의 원자력안전위원회 35차 분과위원회 회의에서는 이런 발언이 있었다. “송전선은 발전소에 비상용 전원기를 설치하기에 이것이 작동하지 않을 확률은 낮고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다. 비상용 냉각계에 대해서는 충분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36차 분과위 회의에서는 한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다.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두 개 다 작동하지 않을 확률은 10의 마이너스 8승에서 9승입니다.” 그러나 이런 호언은 하루아침에 거짓이었음이 판명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가 터진 다음 기자들의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질문이 잇따르자, 동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전위에서는 지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원자력에 관하여 고도의 전문지식이 전제되는 분야이기에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보통 사람들은 그 의견에 따르면 된다는 통념에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원자력발전소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관계되고 인간의 기본 생존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재앙으로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비록 비전문가이지만 우리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고 탐구하고 숙고하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의 기본 원리는 수력이나 화력이나 터빈을 돌아가게 해서 그 터빈이 돌아가는 운동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전환되도록 하는 것이다. 수력발전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일으키는 것이고 화력발전은 석유나 석탄으로 물을 끓여서 수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아가게 하여 전기를 일으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에 강제로 핵분열 과정을 일으켜서 생겨나는 ‘열’로 물을 끓이고 거기서 생겨나는 수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아가게 하여 전기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서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의 핵분열을 일으켜 열을 발생시키고 그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키는 원자로 부분과 거기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라늄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 압력용기가 과열되지 않게 하려면 항시 냉각수로 원자로를 식혀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원자로에는 이 냉각 공정을 위해 직경 3센티미터, 길이 20미터의 세관이 수천 개 들어가 있고, 원자로 부분과 발전시설 부분이 연결되는 것도 증기와 물이 회전하는 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수많은 배관을 연결하는 용접부위는 주변의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고농도의 방사능 오염수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지진이 아니라도 우리나라에서 2002년 4월 정기점검을 위하여 가동을 멈춘 울진 원전 4호기에서 증기 발생기와 연결되는 세관이 찢어져 10분 동안 방사능을 머금은 냉각수 45톤이 유출되는 ‘1등급’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일어나자 원자로를 식히고자 물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원자로를 냉각시키지 않으면 연로의 온도가 급상승하여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물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수작업을 계속하면 이미 원자로에서 누출된 고농도 방사능 때문에 오염수가 갈수록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농도 오염수를 담아둘 공간을 확보하고자 저농도 오염수는 바다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 후쿠시마 원전에는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가득하다. 벌써 여러 날 전에 9만 톤 분량이 갇혀있다고 한다. 이런 규모의 방사능 오염수를 취급해 본 경험은 미국이나 소련의 시설에도 없다고 한다. 원자로 내부의 핵분열 과정에서는 발전에 필요한 열과 함께 세슘, 스트론튬, 요오드, 크립톤, 플루토늄 같은 대단히 위험한 방사성 물질이 약 200여 종 이상이 생성된다. 이것이 ‘고농도 방사성 폐기물’이다. 이런 고농도 방사성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보통 3중으로 된 용기에 격납하여 지하 300미터보다 더 깊은 곳에 묻는다고 한다. 3중이라고 함은 제일 내부는 스테인리스 용기, 그 다음 이 스테인리스 용기를 철제 용기에 담고, 그리고 철제 용기는 규산알루미늄 용기에 담는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 안전성에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지하 300미터까지 다다르려면 대부분의 지하층에서 2-3개의 지하수 층을 비켜갈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방사능 폐기물 보관 터널이 지하수 층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지하수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한다. 특히 지진이 일어날 경우 방사능 폐기물 터널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은 대단히 농후하다고 한다. 지진 같은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원전이 정상적으로 가동된다 하여도 수명이 다한 원자로를 폐쇄하는 데는 엄청난 세월이 필요하다. 상업원자로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2001년부터 폐로 작업에 들어간 ‘동해 원자로’의 경우 건물을 해체하여 전 작업을 끝마치는 것은 2020년이라고 한다. 곧 원자로 하나를 온전히 폐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년이란 이야기다. 정상으로 가동된 원전도 그 내부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폐쇄도 일반 건물처럼 그냥 부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보통 빌딩은 외벽부터 부수지만 원전의 경우는 반대다. 곧 핵연료를 드러낸 다음, 방사능이 감쇠되기까지 10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 후에 압력용기 등의 중심부를 해체하여 드러내고 마지막으로 건물을 부수고 평지로 만든다. 대형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내부 손상이 심하기 때문에 통상적인 폐로 작업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한 원자로 기술자는 이렇게 말한다. “향후에는 작업용 특수 로봇을 개발하는 등, 가능한 한 안전하게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압력용기에서 핵연료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경우에는 콘크리트로 덮어씌우는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을 다 완료하려면 30년은 걸릴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로 냉각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전 위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대기 중의 방사능 오염은 비교적 염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인 것 같은데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사태는 어떻게 해서든 막지 않으면 안 된다. 해양오염이 시작되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수습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염수가 원전에서 새어나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지난해, 2010년 6월 17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2호기에서는 전원상실사고가 일어나 거의 ‘멜트다운’ 상태에 돌입할 정도의 대형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미디어는 이 때 남아프리카의 월드컵 보도에만 치중하고 이 심각한 사고에 관하여 거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부에서 발전소로 보내는 전기 계통이 4개 모두 끊어졌었다. 발전기도 원자로도 긴급정지 하였으나, 원자로 내부의 비등은 격렬하게 계속되었고, 내부에서 물이 급속히 줄어들어 노심(爐心)이 녹아내리기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전원 4개 선이 모두 끊겼는지 발전소 측은 원인도 정확히 찾아내지 못하였다. 다만 그 사고 나흘 전인 6월 13일 후쿠시마 앞바다를 진원지로 하는 꽤 큰 지진이 원전 주변을 흔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고 당일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런 중대사고가 발생하였다면 관계자들은 대지진이 엄습하였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고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무런 대처 없이 지나친 동경전력은 결국 치명적인 재앙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원자력발전에서 연기는 나지 않고 탄산가스는 직접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신 연기보다 훨씬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을 양산한다. 사용 후의 핵연료뿐 아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시설부품이나 의류, 쓰고 버려야 할 부수적인 물품들이 많다. 이들은 안전한 처리 방법이 없고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위험한 쓰레기다. 그리고 원전에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원전을 장기적으로 무사고로 가동하려면 항시 섬세한 유지 관리 작업을 해야 하며 그것은 텔레비전 화면에 깔끔하게 보이는 계기판만 가득 보이는 중앙통제실과는 거리가 먼 위험한 노동환경에서의 육체노동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데도 원자력을 클린 에너지, 녹색 에너지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속임수다. 녹색 에너지가 아니라 적색 에너지다. 방사선은 본디 인간뿐 아니라 생명체의 존재와는 공존할 수 없는 괴물이다. 생물은 지구상에 방사성 물질이 거의 사라지고 나서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태곳적에는 여러 가지 원소들이 있었으나 우라늄보다 무거운 원소는 불안정하여 붕괴해 버리고, 그 결과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생물은 세대를 바꾸어가며 존속한다. 그러나 방사선은 개개의 생명의 지속과 새로운 세대로의 재생산을 지탱하는 유전정보에 혼란을 일으킨다. 곧 염색체를 절단해 버린다. 그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피폭자들을 관찰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염색체가 절단되면 신체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세포의 복제가 안 되고, 이상 염색체는 유전정보에 혼란을 초래해 변이를 일으킨다. 이렇게 방사능은 개개의 생명체만이 아니라 종(種)의 존속을 위협한다. 이는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다.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는 어떤 피해를 가져오는가? 이번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원전에서 반경 20킬로미터 이내 지역에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될 만큼 방사성 물질이 퍼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주민들이 타지역으로 집단 이주를 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주로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다른 지역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런 전망이 안 보인다. 이주하여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해 아직 일본 정부도 지자체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수산물 생산자뿐만 아니라 유통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사업상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직접적으로 출하하지 못하는 농수산물의 피해 뿐 아니라 “풍평(風評)에 의한 피해”도 보상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곧 실제로는 오염되지 않은 지역의 농수산물까지 소문이나 미디어의 부정적인 보도에 따라 소비자들에게서 완전히 외면받는 경우다. 그리고 정신적 고통도 피해보상의 대상이 된다. 뿐만 아니라 원전사고 때문에 실제로는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수도권에서조차 관서지방으로 이동하는 가족도 증가했다. 이런 이들의 이사비용, 피난비용도 보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원전사고 때문에 발전량 부족이 빚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계획정전이 실시되고 있으나, 아무리 사전에 예고를 한다 하여도 한 지역이 통째로 정전이 되면 영업상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사업체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한 보상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드러난 피해에 대한 보상액만 따져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이다. 그래도 원자력 발전이 경제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이 1960년 4월 일본 과학기술청의 위탁을 받고 일본 원자력 산업회의가 작성한 비밀문서 ‘대형원자로 사고의 이론적 가능성과 공중손해액에 관한 시산(試算)’에는 이바라키현의 ‘동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일본 정부가 그 피해를 보상할 수 있을까, 보험회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보고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최소한 1조 엔의 손해액이 발생할 것이며, 이러한 원전재해에 관하여 보험회사가 피해액을 지불할 능력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전력회사는 일본국내 손해보험회사들이 만든 ‘일본 원자력보험 풀’에 가맹하여, 원전 1기당 1,200억 엔까지만 배상금을 지급할 의무를 지니는 것으로 제한하였다. 곧 배상책임에는 상한선이 있고, 그 보험을 초과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외국의 ‘원자력보험 풀’은 일본의 지진에 의한 원전재해를 두려워하여 지진을 포함한 손해의 재보험을 수용하지 않았다. 일본 ‘원자력보험 풀’의 보험에서도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짙은 ‘지진에 의한 원자력 재해’를 보험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당장에 생각할 수 있는 경제적인 피해일 뿐이다. 그런데 방사성 물질 누출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인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후발성 방사능 후유증’까지 합치면 총 70여 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2006년도 공식 집계에서 밝힌 사망자 수는 초기 대응 과정에서 56명, 1986년에서 1987년 사이에 투입된 22만 6천 명의 작업자들 중 25,000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백혈병과 갑상선암 등으로 고생한 환자들의 수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방사능은 자연계의 먹이사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핸포드 핵폐기물 재처리 공장에서 나오는 배수가 흘러들어가는 콜롬비아 강에서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강물에서 측정된 방사능이 1이라고 할 때 플랑크톤에는 2,000배 농축되고, 그 플랑크톤을 먹는 물고기에는 15,000배 농축되었고, 그 물고기를 먹은 오리에는 무려 40,000배 농축되었음이 드러났다고 한다. 방사능은 이렇게 자연계 안의 먹이사슬 안에 진행될수록 엄청나게 농축된다. 오늘날 화학물질인 식품첨가물이나 농약성분이 인체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며 식재료 선택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은 그보다 훨씬 더 나쁘다. 왜냐하면 방사성 물질은 그 수명이 거의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세슘 반감기는 30년, 스트론튬 반감기는 29년이며, 플루토늄 반감기는 약 24,000년이라고 한다. 세슘은 나트륨과 섞여 인체에 흡수되고 각종 암이나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고, 스트론튬은 칼슘과 비슷해 뼈 속으로 흡수되어 골암이나 백혈병을 유발한다. 2009년 오바마 정권 탄생 직후에 미국 정부는 “고농도 방사성 물질은 100만 년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발표하였다. 방사성 물질은 다른 무엇으로도 통제나 제거가 안 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한국인 생존자의 2세들은 같은 나이의 일반인에 비해 빈혈 88배, 심근경색과 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정신분열증 23배, 천식 26배, 갑상선 질환 14배로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방사능은 인간의 건강에 이렇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강한 독성을 지닌 물질이지만, 이것을 차단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방사능은 인간이 어떤 기술로도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대재앙이다. 원자력 발전의 윤리성 “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로서, 이를 사용하는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와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자연환경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 이상으로 소중한 창조주의 놀라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에는 그것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과 기준을 알려주는 ‘공식’ 이 담겨있다”(진리 안의 사랑, 48항).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곧 동물이나 식물이나 무생물이나, 자연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아름답고 조화로운 선물이며 인간은 이를 보호하고 온전히 지켜나갈 사명을 부여받았다. 아무리 무생물이라 해도 인간이 자기 원대로만, 자신들의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 고갈시키거나 탕진해서는 안 된다. 모든 피조물 안에는 각 사물의 본성이 있고 또 우주 안에서 다른 피조물과의 상호 질서와 연계가 있다. 그런 본성과 질서를 무시하고 인간의 탐욕에 따라 자원을 고갈시키거나 탕진하면 자연계 자체의 본성과 질서가 인간을 응징한다(사회적 관심, 34항 참조).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연계의 지배는 절대 권력이 아니다. 자원의 개발과 이용에는 지켜야 할 도덕적인 요청이 따른다. 우리는 자연계의 이용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태초부터 창조주 친히 설정하신 한계, “그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하시는 금령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에 한계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창세 3,16-17 참조). 이는 “우리가 자연계를 대할 적에 그 생태학적인 법칙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법칙에 귀속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위반할 적에는 반드시 징벌이 따르게 되어있다”(사회적 관심, 34항). 핵분열을 통한 원자력 발전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의 기술로 통제가 불가능하고 제어가 안 되는 방사성 물질을 끊임없이 양산한다. 핵폐기물은 거의 영구적으로 방사능을 지닌 채 존속하고 그것은 땅속이라고 하지만 계속 쌓여만 간다. 지하의 토양과 지하수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생태계 전체와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으며 아무런 해결방법이 없다. 몇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이제는 원자력 발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다른 길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해충을 죽이려고 DDT를 즐겨 사용했다. 집을 지을 때 석면을 온 사방에 넣고 방음, 단열재로 썼다. 그러나 이런 물질들이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면서 사용을 중단했다. 원자력은 그런 화학물질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물질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익과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을 만들어내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를 무한정으로 쓰기만 하려는 현대의 문명을 재고하여야 한다. 우리 자신의 소비지상주의 문화를 심각하게 재고하여야 한다. 일본은 자판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판기에 대한 재고가 거론되고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자판기만 없애도 원전 하나를 폐기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에너지 사용을 해마다 늘려가는 현실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결코 고갈되고 파괴된 자연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 역시 계속해서 이 땅을 일구며 거기에서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땅을 보존하여 물려줄 막중한 의무가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진리 안의 사랑, 50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