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서한]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신학생들에게 보내는 서한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10-12-30 조회수 : 4032
[서한]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신학생들에게 보내는 서한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신학생들에게 보내는 서한
(2010년 10월 18일)



   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1944년 12월, 제가 군대에 징집되었을 때 중대장이 각 사병에게 장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가톨릭 사제가 되고 싶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상관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그러면 자네는 뭔가 다른 것을 찾아야겠군. 새 독일에는 사제들이 필요 없으니까 말일세.” 사실 저는 이 “새 독일”이 이미 쇠락해 가고 있으며, 이러한 광기가 온 나라에 몰고 온 엄청난 대재앙 뒤에는 반드시 그 어느 때보다 사제들이 더욱 필요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 모로 오늘날 많은 이들은 가톨릭 사제직은 장래성 있는 “직업”이 아니라 오히려 구시대적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이러한 의견과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제직을 향한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참 좋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제 아무리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화 시대에 산다 하더라도 사람은 늘 하느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하느님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보편 교회 안으로 함께 불러 모으시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삶의 참 의미를 배우고 진정한 인간성의 기준을 지키고 실천하게 하십니다. 더 이상 하느님을 인식하지 못하면, 삶은 공허해집니다. 어디에도 결코 만족이란 없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쾌락이나 폭력에서 그 도피처를 찾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점점 더 청년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셨고 우리 모두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위대하시어 우리 삶의 사소한 것까지도 다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습니다(마태 10,30 참조). 하느님께서는 살아계시며, 당신을 섬기고 다른 이들에게 당신을 전할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렇기에 사제가 된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언제나, 시간의 끝에 이르기까지, 사제들을, 목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신학교는 사제직을 향하여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서 저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곧 자기 혼자서 사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공동체”, 곧 더 위대한 교회에 봉사하려고 모인 동료 모임이 본질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서한을 통하여 저는 저의 신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며 여러분이 신학교에서 보내는 이 여정의 시기에 중요한 몇 가지 사항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1. 사제가 되려는 사람은 바오로 성인의 말씀처럼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사람”(1티모 6,11)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추상적인 가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빅뱅’ 이후 자취를 감추신 낯선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친히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따라서 사제직을 향한 길에서, 그리고 사제 생활 내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사제는 그가 이끄는 단체의 구성원들을 유지하고 그 수를 확장시키고자 애쓰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사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입니다. 사제는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여 모든 사람들 사이에 참다운 친교가 이루어지도록 북돋아 주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느님과 한결같이 친밀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우리에게 기도문을 끊임없이 낭송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과 내적인 친밀함을 결코 잃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그러한 친밀함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마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성경을 읽을 때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바람과 희망, 우리의 기쁨과 고통, 우리의 잘못을 그분께 말씀드리고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드리며, 그분을 우리 앞에 모시고 우리 삶의 준거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당연하게 여기며 받아들이는 모든 선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깨닫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느님께서 우리와 친밀하시다는 사실에 또 우리가 그분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2. 우리에게 하느님은 그저 말씀으로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성사들 속에서 물질적 실재를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몸소 내어 주십니다. 하느님과 우리 관계의 중심에, 그리고 우리 삶의 중심에 바로 성찬례가 있습니다. 성찬례를 정성스레 거행하고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것이 우리 나날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치프리아노 성인은 복음의 기도를 풀이하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서 ‘우리’의 양식은 다른 무엇보다 성당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양식, 바로 성체의 주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우리의’ 양식을 주십사고 청합니다. 그리고 이 양식이 언제나 우리 삶의 양식이 되기를, 그리하여 성체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거룩한 사랑으로 우리를 비추시어 진정 우리 삶 전체를 빚어 가시길 빕니다. 성찬례를 합당하게 거행하려면 우리는 교회의 전례를 구체적으로 알고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례 안에서 우리는 모든 세대, 곧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신자들과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리는 하나의 위대한 합창단을 이룹니다. 제 자신의 경험으로 확언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얼마나 위대한 신앙 체험이 미사의 구조 안에 반영되어 있는지, 또 수많은 세대의 기도가 모여 어떻게 전례를 이루어 왔는지를 배우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입니다.

3. 고해성사 또한 중요합니다. 고해성사는 저에게 하느님께서 보시듯이 제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치고, 저를 제 자신에게 정직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고해성사는 저를 겸손으로 이끕니다. 아르스의 본당 사제도 언젠가 이러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내일 또다시 같은 죄를 범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에게 당신의 은총을 베푸시려고, 결코 내일의 죄는 생각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싸워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는 사실에 체념하고 마는 무관심과 영혼의 무감각을 떨쳐 버리는 것입니다. 너무 세심해서도 안 되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언제나 새로이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성덕과 자기 개선을 위한 투쟁을 모두 포기하게 만드는 무관심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이 용서를 받게 되면,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할 때 내 이웃의 잘못을 훨씬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4.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대중 신심을 존중하십시오. 대중 신심은 문화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언제나 매우 비슷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대중 신심은 비합리적으로 흐르기 쉽고 때로는 다소 피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대중 신심을 묵살해 버리면 큰 잘못이 될 것입니다. 대중 신심을 통하여 신앙은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사상과 관습이라는 공동 유산의 한 부분을 이루고 공동체의 생활과 정서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대중 신심은 교회의 위대한 보화입니다. 이를 통하여 신앙이 살과 피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분명히 대중 신심은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고 재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하고, 실제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줍니다.

5. 신학교 시절은 무엇보다도 공부하는 시기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차원이 없다면 그 자체로 신앙일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가 세례 때 받은 “표준 가르침”(로마 6,17)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다음과 같은 베드로 성인의 말씀도 알고 있습니다. 중세 신학자들은 그 말씀이 이성적이고 학문적인 신학을 정당화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의 ‘이유’(logos)를 누가 물어도 답변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참조). 그렇게 답변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 신학교 시절 여러분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학창 시절을 잘 활용하십시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배우는 과목들 가운데 더러는 그리스도인의 실생활과 사목 직무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이 그 실제 가치를 문제 삼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 과목이 과연 나중에 나에게 도움이 될까?’ ‘이 과목이 실질적으로나 사목적으로 유익한 것일까?’ 핵심은 단순히 유익한 것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내적 구조 그 전체를 이해하고 인식하여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겉보기에는 세대마다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똑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질문들을 벗어나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대답이 참된 대답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대한 완벽한 지식, 다시 말해 구약과 신약을 그 단일성 안에서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 본문의 형성, 그 문학적 특성, 경전 형성 과정, 얼른 보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개별 본문에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는 그 역동적이고 내적인 단일성을 깊이 이해하여야 합니다. 또한 교부들과 주요 공의회들의 가르침도 익혀야 합니다. 그 가르침에서 교회는 믿음이 충만한 성찰을 통하여 성경의 핵심 진술들을 밝혀 왔습니다. 저는 쉽게 이리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곧, 우리가 교의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앙의 단일성 안에서, 참으로 그 궁극적인 단순성 안에서 신앙의 개별 내용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각각의 요소들은 당신을 우리에게 몸소 계시하셨고 또 계시하고 계신,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펼쳐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윤리신학과 가톨릭 사회 교리의 핵심 문제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일치 신학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요 종교들에 대한 기초 지식도 필요하며, 철학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곧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신앙이 그 답을 찾는 과정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또한 교회법을 이해하고, 단언하건대,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교회법의 필요성을 깨닫고 그 실제 적용을 중시하여야 합니다. 법이 없는 사회는 권리가 없는 사회일 것입니다. 법은 사랑의 조건입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그만 열거하겠습니다. 여러분, 신학 공부를 사랑하십시오. 신학이 살아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신학을 공부하십시오. 교회는, 그 권위와 더불어, 신학의 반대 명제가 아니라 그 전제입니다. 신앙하는 교회와 단절된 신학은 더 이상 신학일 수 없고, 내적 단일성이 결여된 여러 학문의 혼합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6. 신학교 시절은 인격 성숙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제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다른 이들과 함께 인생 여정을 걸어가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기에 마음과 정신, 이성과 감성, 육체와 영혼이 올바른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곧 사제는 인간적으로 “온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교 전통은 언제나 향주덕에, 인간 경험과 철학에서 비롯된, 더 일반적으로는 인류의 윤리 전통에서 나온 중추적인 덕들을 결합시켰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필리피 신자들에게 이 점을 매우 분명히 하셨습니다. “끝으로,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이 말씀은 온전한 인격 안에 성(性)도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성은 창조주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성은 인격 성숙을 향한 개인의 성장과 관련된 일이기도 합니다. 인격 안에 통합되지 못한 성은 저속하고 파괴적인 것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숱한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참으로 개탄스럽게도 몇몇 사제들이 어린이와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그들의 직무를 훼손한 사건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인격을 갖추도록 인도하고 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사제들이 추행으로 크나큰 해를 끼쳤고, 이로 인해 우리는 깊은 슬픔과 치욕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결과로 많은 이들이,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어떤 이들은, 사제가 된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독신의 선택이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추악한 성추행이라 해도 사제직의 사명을 훼손시키지 못합니다. 사제직의 사명은 언제나 위대하고 순수합니다.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우리는 모두 모범이 되는 사제들을 알고 있습니다. 신앙이 충만한 사제들, 사제 신분으로, 특히 독신 생활을 하면서도 진정하고 순수하며 성숙한 인간성에 이를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사제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일어난 일들은 분명히 우리를 더욱 깨어 있게 하고 조심하게 만듭니다. 바로 우리가 사제직을 향해 나아가며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하여, 과연 이 길이 나를 위한 그분의 뜻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여러분의 고해 사제들과 장상들은 이 식별의 길을 여러분과 함께 걸으며 여러분을 도와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하느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언제나 새롭게 정화해 주시도록 맡겨 드리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덕행들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걷는 여정의 핵심입니다.

7. 오늘날 사제성소를 선택하는 계기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사뭇 다릅니다. 지금은 세속의 직업 경험을 가진 이들 가운데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흔히 공동체, 특히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함께 만나게 해 주고 신앙에 봉사하는 가운데 영적 체험과 기쁨을 주는 운동 단체들을 통하여 성소가 자라나기도 합니다. 또한 인간 실존의 위대함과 비참함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체험에서 성소가 성숙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제직 후보자들은 흔히 매우 다른 영적 토양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미래의 직무와 영적 여정의 공통 요소를 찾아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로서 신학교가 지닌 역할이 중요합니다. 운동단체는 훌륭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 단체들을 성령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로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아끼는지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참으로 가톨릭적인 것에 열려 있느냐, 그 모든 다양성에도 언제나 하나인 그리스도 교회 전체의 삶에 열려 있느냐에 따라 그들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신학생 시절은 여러분이 서로 함께 배우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시기입니다.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때로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공동생활을 하면서 여러분은 너그러움과 관용을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서로 참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를 풍요롭게 하여 자신의 재능을 전체를 위해 내어 줄 수 있고, 또 모두 같은 교회, 같은 주님께 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관용의 학교,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단일성 안에서 서로 받아들이고 서로 이해하는 이 학교가 여러분이 신학교 시절에 살아야 할 곳입니다.

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저는 이 글을 통하여 제가 특히 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여러분을 자주 생각하며 기도 중에 여러분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하여, 제가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저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사제직을 준비하는 여러분의 여정을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의 보호에 맡겨 드립니다. 그분의 가정은 선함과 은총의 학교였습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강복하시기를 빕니다.




2010년 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에
바티칸에서

주님 안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원문 Letter of His Holiness Benedict XVI to Seminarians 2010.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