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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춘천교구장 사목교서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16-08-27 조회수 : 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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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도 춘천교구 사목교서

복음을 믿고 사는 이웃 공동체

《하나되게 하소서》요한 17,21



I.  대희년을 향하여


 1.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준비하는 마지막 삼년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신(갈라 4,4-5) "주님의 은총의 해"(이사 61,2; 루가 4,19)가 개벽한지 머지않아 이천년이 되는 것입니다.

  곧 다가올 이 대희년은 우리들 신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구세주 예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인종, 모든 시대와 지역을 너머, 온 인류를 살려내기 위해 강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천년이 지나도록, 우리나라는 이백년이 지나도록,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  이렇듯 새로운 천년기를 여는 길목에 선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자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 뿐 아니라, 교회인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참 삶의 길과 기쁨을 찾아 얻을 수 있도록 힘쓸 사명을 받잡고 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들부터 회개하여 앞으로 해야 할 바를 새로운 눈으로 바로 보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깨달은 바를 살아 나감으로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몸소 알리는 참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그러려면 우선 첫 제자들처럼 오늘의 우리 또한 죄와 죽음을 십자가 사랑으로 이기신 분의 부활을 참으로 체험하고, 그 보내시는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는"(고린전 15,21-22.45 참조) 새로운 창조의 놀라운 은혜를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나아가서 바로 이 믿음의 빛으로 지금 우리가 그 안에 놓인 세상과 또한 우리들 자신의 상황을 비추어 이를 올바로 보고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마침내 교회인 우리가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이웃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신앙공동체로서, 어떻게 살고 또 무엇부터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제대로 깨닫고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는 분명 인류사상 꿈도 못 꾸어본 가능성과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지식과 과학기술, 정보소통과 국제협력 뿐 아니라 문맹퇴치와 수명연장, 생활향상과 인권수호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실로 놀라운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역설적으로도, 동시에 맹목적인 배금주의와 도덕붕괴, 광신과 배타와참혹한 분쟁, 극도의 이기주의가 빚어내는 세계규모의 부익부빈익빈, 무자비한 경쟁과 지식의 무기화, 무책임한 환경파괴와 경악할 생명경시를 보면서 우리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개개인도 그렇듯이, 실로 빛과 어둠의 세상, 비참과 희망의 세상, 한마디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갈망하는 세상입니다. 저 사마리아 여인도 구세주를 만나기까지 "생수가 솟는 샘을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 하여 물이 고이지 않는 웅덩이를 파고"(예레 2,13 참조) 있었던 것입니다.


5.  교회 공동체라고 해서 이런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아니, 교회인 우리는 그 안에 있을 뿐더러 그 안으로 파견되어 있습니다.

  다만, 온 세상을, 더 가까이는 우리나라 사회를, 좌우하는 빛과 어둠의 걷잡을 수 없을 듯한 이런 엄청난 힘들 앞에서 교회인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더구나 신자 개인으로서 어쩌라는 것일까 하는 무력감에 빠질 만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마십시다. 사회의 선이나 악의 뿌리는, 세태나 제도보다도, 근본적으로 인간 각자의 마음 속에 있음을.  악행을 일삼는 사람은 고사하고, "세상을 개선하는 일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나서 그것을 구실로 자기의 작은 세계에 안주하는 인간들도 모두 개인의 죄를 범하고 있다"(화해와 참회 16 참조)고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강조하십니다.

성서는 그러나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이 넘쳐흘렀다"(로마 5,20)고 단호히 주님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참된 각성과 회개, 믿음의 분발과 사랑의 실천만이 하느님의 자녀 된 도리이요 나아갈 길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고린전 4,1)하기 때문입니다.


6.  이렇듯 "모든 피조물은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영의 첫 선물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자신도 아들의 신분을, 바로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2-23). 

  우리 모두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미사 전이나 후에 늘《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기도문》을 바칩시다.


II.  우리가 함께 갈 길


1.  길을 나서기에 앞서 지도를 펴보아야 합니다.

   복음화의 새 새대를 여는 계기로 대희년을 맞고자 하는 교회의 뜻을 우선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제삼천년기>가 기본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주교회의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가 펴내고 있는 《 대희년 길잡이》 (제1권: 희년의 성서적 근거와 우리의 현실; 제2권: 희년의 그리스도 신앙적 의미; 제3권: 희년의 실천적 구현과 우리의 미래) 세 권이 있습니다.  이 소책자들은 본당 내외의 모든 모임에서 함께 읽어나가도록 하면 희년 맞이에 큰 도움이 됩니다.


2.  그렇다면 이제 다가올 구세주 탄생 대희년의 실천을 향해 무엇부터 해야겠습니까.  한마디로 복음을 믿고 사는 이웃 공동체가 되는 기초를 다지도록 함께 힘써야겠습니다.  그것은 크게 보아, 믿음의 심화, 사랑의 일치, 희망의 실천 - 이 세 가지를 말합니다.  즉 평소의 전례? 성사? 기도? 봉사 등 통상적 신앙생활의 바탕을 더욱 다지자는 것입니다.


2.1  복음을 믿으려면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 말씀을 몸에 익혀, 하느님이 뉘시며 그 자녀인 우리는 누구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신자라면 누구나 성서모임, 성서 쓰기, 청소년 성서 공부 등 여러 길 중하나를 택하거나, 혼자서라도 일상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살아나가면 큰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2.2  믿는 바를 더욱 깊이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통한 신앙의 유산인, 성서? 전례? 교부? 공의회의 가르침 등을 더없이 잘 종합하여 제시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내용을 우리 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교우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진지하게 공부하고 이해해 나가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이 없겠습니다.  원본을 신앙입문 서로 요약 정리한 <가톨릭 예비자 교리서>를 예비신자들 뿐 아니라 이미 영세한 교우들도 1997년부터 꾸준히 보아나가고, 견진 교리로는 그《 4단계 신비교육기》를 취하도록 함이 좋겠습니다.  


3.  복음적 이웃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어려움은, 앞서 보았듯이(4항), 크고도 많습니다.  그러나, 다 함께 마땅히 우려해야 할 그런 풍조와 세태로 인해 오히려 시민 양심이 크게 눈을 떠 참된 인간성을 되찾아 나서는 값진 노력도 도처에 보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또 그렇기 때문에, 교회 또한 밖으로 더 열려있으면서 안으로도 한 걸음 한 걸음 내실에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3.1  안으로는 무엇보다도 신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터전을 튼튼히 닦아야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신심? 활동 단체의 열정과 헌신이 본당을 주도할 만큼 그 공헌이 컸습니다. 그러나, 증가 일로에 있는 냉담 율을 보더라도, 이제부터는 신자 누구나가 다 자연스레 함께 할 수 있는 인간규모의 소공동체의 활성화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러려면 신자 모두를 포함하는 본당의 기본 틀인 구역과 공소와 특히 반이 친밀한 사귐과 나눔과 섬김의 이웃 공동체로 살아 숨쉬어(사도행전 2,43-47) 본당이 그야말로 산 세포인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3.2  진정한 복음적 빛과 사랑으로 뭉쳐있는 공동체의 품안에서라면 오늘날 시련을 겪고 있는 신자 가정도, 특히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청소년도 외롭게 잊혀져 가는 노인도 남모를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도 모두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실제로 체험하고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3.3.  밖으로는, 주 그리스도의 구원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믿는 공동체로서,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있는 교회, 이웃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특히 어렵고 가난한 이에게 이웃이 되어주는(루가 10,36) 교회, 주님 따라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러 온' 교회, 그때 그때의 현실 안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교회로 변신해야겠습니다.

  이처럼 한마음 한뜻이 되어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말과 삶으로써 증언하며(행전 4,32-33)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온 백성에게 호감을 사면, 단지 말로 하는 전교로 그치지 않고 , 사도 시대처럼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실 것입니다(행전 2,47).

  춘천교구에는 하느님께서 일찌기 엄주언 말딩 회장님과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 같은 훌륭한 모범을 고맙게도 앞세워 주셨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분발하여 본받으십시다.


3.4  새로운 창조질서를 안팎으로 지향하는 대희년의 뜻에는, 하느님과 이웃과 나 자신과의 관계 혁신과 일치 뿐 아니라, 갈수록 큰 의미를 띠는 자연과의 참된 관계와 책임도 포함됩니다.  그것은 "역사를 완성으로 이끄시어,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가 되게"(에페 1,10) 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드는 신앙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 교구의 여건과 특성으로 보아 농촌 사목을 통한 지역활성화와 폭넓은 생명운동 환경보호에 교회의 남다른 적극적 투신이 요청됩니다.

4.  우리 교구는 반세기에 이르는 민족분단의 아픔을 직접 몸에 안고 있습니다.

춘천교구의 절반이 휴전선 너머에 놓여 있고 그 쪽 인구도 이 쪽에 못지 않은 실정임에도, 우리는 그 반쪽은 막연히 언짢게, 멀리만 느끼며 매일의 관심사에서는 내어놓다시피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우기 그 쪽 교우들의 소식마저 모르는 형편에, 통일에 어떻게 대비하고 겨레의 화해와 일치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막막해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일은 단지 정치? 군사? 경제? 제도의 차원에서만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야말로 하느님 사랑의 실천이 교회인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우리나라가 참으로 치유되고 하나되게 하는 일은 그러나 인력으로 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간절히 기도하며 우리나라의 주보이신 성모님과 우리 순교선열들의 전구에 의탁하며 실질적인 통일 준비에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임하십시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여러분 하나하나는 그 지체들입니다"(고? 전12,27).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며 인내를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면서 평화의 끈으로 영의 일치를 힘써 지키시오"(에페 4,1-3).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1).  모두가 우리라는 이웃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어 구원의 기쁨에 이르게 하소서.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내림 하시는 구세주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1996년 대림절에

춘천주교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