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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새날을 맞는 우리의 새삶
“주님의 성령이 내게 내려오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I. 은총의 대희년을 맞으며
1. 이제 곧 기다리던 대희년을 맞아들이는 은총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세기가 바뀌고 새 천년기가 시작되어도 교회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히브 13,18)을 더욱 굳게 믿고, 그분만이 온 인류의 구원이심을 실생활로써 더욱 참되이 입증할 <새 복음화>의 소명을 오늘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대희년을 내실 있게 준비하고자 지난 3년 동안 성자의 해, 성령의 해, 성부의 해를 차례로 열심히 지내면서 믿음의 깊이를 더하고 삶을 새롭히며 복음을 알리는 데 다 함께 힘써 왔습니다.
2. 우리 춘천교구도 그동안 지역 활성화와 소공동체 다지기, 신심․활동 단체 재정립, 성서 맛들이기, 교리 배우기 등에 정진해 왔습니다. 또 때마침 교구 60주년을 맞이하여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그지없는 은혜를 기리어 지역마다 감사제를 올리며, 우리나라 전체 교회와 일치하여 새날․새삶 운동을 더욱 알차게 실천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3. 한편, 바로 대희년인 2000년이 민족의 크나큰 비극이었던 6․25전란의 50주년이기도 합니다. 이 날을 기해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겨레 뿐 아니라 온 인류의 화해와 일치와 평화를 간절히 비는 기원미사를 분단국의 분단교구인 우리 지역 휴전선에서 대희년 전국행사의 하나로 거행하게 됩니다. 이미 북강원도를 위한 <한솥밥 한식구> 운동으로도 힘써 왔듯이, 춘천교구가 주관할 이 기원미사 역시 한 번 치르고 마는 그런 행사로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마음가짐과 기도와 헌신의 표현이자 계기가 되도록 해야만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신자, 수도자, 사제가 다 함께 마음으로부터 감사해야 할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II. 기쁨과 고마움을 깨닫고
4. 이처럼 꾸준한 대희년 준비로 교회 안은 물론 밖에서마저 날로 부산함에도 불구하고, 왠지 성실한 많은 교우들까지도 그 기쁨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여 막연히 답답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희년의 취지가 말하듯이 무언가 시원스레 풀어주고 기쁨을 안겨 줄 것을 모두가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오늘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참된 구원과 해방을 언제나 갈망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처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바로 그러한 인간이기에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지극한 자비를 베푸시어 당신 아드님을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놀라운 은총의 해(이사 61,2; 루가 4,19)가 개벽한 지 이천년이 되었음을 다 함께 크게 기뻐하고 깊이 감사하며 그 뜻을 우리 삶의지금 여기에서 실천하자는 것이 희년의 본 뜻이 아니겠습니까.
5. 이처럼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성자께서 몸소 나타내 보이신 하느님의 그지없는 사랑, 당신이 먼저 베풀고 풀어주고 살려주시는 저 놀라운 사랑이 우선 우리 마음에 깊이 사무쳐, 우리가 정말 새 사람으로 태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토록 사랑 받았음을 깨달아 기쁘고 고마운 나머지 우리 또한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일으켜 세워주는 너그러운 사랑을 나부터 실천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 길러 보아야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말에 그대로 견줄 바는 아니겠으나, 이웃사랑과 하느님사랑, 그 기쁨과 고마움도 모두 하나로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믿는 이의 참 기쁨과 자유란, 남에게만 탓을 돌리며 내 몫을 얼마나 주장하고 찾아 얻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부터 얼마나 예수님을 깊이 닮아 남에게, 서로에게, 해방과 기쁨을 주는 새롭고 은혜로운 삶을 사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이천년을 맞는 새로움 또한 그저 달력을 넘겼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나날이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나를 진정 얼마나 새롭혀 그 날에 담아내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이것이 급변하는 세상과 세월의 흐름 한가운데를 살아나가는 하느님 자녀인 우리에게 대희년이 주는 고마운 깨우침이고 반가운 도전이며 다시없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III. 새날 새삶 ― 새로운 출발을
6. 일평생 한 번도 아니고 한 세기에 한 번도 아닌 천년에 단 한 번 주어지는 이토록 큰 은총의 때를 맞게 된 우리는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복을 입은 것입니까. 오늘을 사는 부족한 우리들을 하느님께서 따로 여겨보시어 넘치는 은총과 함께 남다른 사명을 띠워 부활복음의 증인으로 이 시대와 세상 안으로 보내고 계십니다. 우리 교구도 여러모로 힘이 넉넉치 못함을 알지만 오히려 거기서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성령의 힘으로 자람을 굳게 믿고 새로 출발하여 앞으로 나아갈 때가 온 것입니다.
새날․새삶 운동에서도 호소하듯이 우선 우리들 하나 하나와 신앙공동체부터 새로 나면서 해나가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전체를 받쳐주고 이끌어주기 위해 사회와 신자와 목자와 관련된 세 가지 과제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힘을 모으기로 하십시다.
6.1 세상 안의 빛과 누룩 되고자
오늘날 온 세상이 ‘지구촌’, ‘세계화’를 외치고 있는 반면 분화, 다원화, 개인주의화의 물결 또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던 공통가치의 틀이 급속히 무너지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는 과연 누구인지마저도 잘 모르게 될 위험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더우기 경쟁과 이윤만을 앞세우는 자기 위주의 소비경제 생활에 모두가 하릴없이 젖어들면서, 밀려나고 잊혀지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종교신앙 또한 점차 다민족․다종교 세상이 되면서 상대화되다 못해 사사로운 취향과 주관쯤으로 격하되어 가고 있음을 봅니다.
이 격변하는 사회 안에서,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자리와 사명은 과연 무엇인지 새삼 물으며 나아갈 길을 열어야겠습니다. “이젠 그래도 천주교라면 사회에서 알아주어” 하는 식의 자만으로는 도무지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본래 자신의 명성이나 영달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전적으로 세상의 생명을 위해서 존재하도록 불리운 것입니다. 신자 아닌 사람을 포함한 이 사회의 누구 나가 교회를 모두를 위해 거기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구원의 성사요 표지로 체험할 수 있도록 변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마태 25,40)을 주님을 섬기듯 섬기는 교회, 이 세상 안에서 누룩과 소금과 빛이 되어 자신을 사르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려면, 즉 부활을 실천으로 입증하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교회가 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성령의 그느르심을 힘입어 신자 개인으로서, 교우 가정으로서, 소공동체로서, 교구로서 저마다 능동적으로 다 함께 진지하게 모색하며 실천해 나가십시다.
6.2 신자의 성숙과 사명감
우리 자신도 그 일부인 세상을 향한 교회의 이러한 사명은 모두가 함께 깨닫고 책임져야 합니다. “교회가 이러니저러니… 그건 교회 당국이 해 주어야지…” 하는 식의 생각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교회헌장 2장 9항)인 우리들 자신이 바로 교회임을 미처 모르거나 저버린 태도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런 만큼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함께 이루는 신자 하나 하나가 오늘과 같은 세상의 상황일수록 더욱 더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 신념에 차고 중심이 잡힌, 어른답고 책임감 있는 신앙인이 되어 다 함께 능동적으로 하느님의 진정한 가족을 이루어 나가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모습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고” 절로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사도 2,47). 세상사나 전교에 말이 모자란 적은 없습니다. 실천이 문제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산 표양을 본받읍시다. 삶으로써 믿음의 은혜를 이웃에게 전하십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부단한 내적 쇄신과 정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신자 각자와 신심․활동 단체마다 능동적으로 내실 있는 계획을 세워 노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구로서는 교구 사목평의회 및 본당 및 지역 사목평의회와 함께 성령의 비추심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대희년을 기점으로 신자들의 건실한 신심 함양과 체계적인 신앙교육을 적극 추진함과 아울러 조화로운 사도직 공조의 기틀을 다져나가고자 합니다.
6.3 사제의 성화와 성소 배양
6.3.1 하느님의 백성을 모우고 이끌며 성화하여 하느님께 봉헌할 직무를 맡은 사제(교회헌장 10항)는 그 직분의 특은 만큼이나 책임도 특별히 큽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교회 전체가 참되이 참여하도록, 주교를 중심으로 하나인 사제단을 이루어, 공동체를 일심전력으로 섬겨야 하는 사제야말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깊이 닮도록 끊임없이 힘써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제도 우선 인간이고 신자입니다. 그런 그에게 남달리 덕스러운 인격과 깊은 믿음과 진실한 사랑이 언제나 요구되고 기대됩니다. 부단한 쇄신과 정진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개개인의 분발은 물론, 교구 차원에서도 종래의 노력을 앞으로 배가하여 모두 주님께 좋은 열매를 맺어드리는 더욱 충실하고 의젓한 일꾼이 되도록 함께 힘쓰겠습니다. 신자 여러분의 열심한 기도와 아낌없는 지원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6.3.2 한편, 우리 교구에서는 근래 사제성소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두드러지게 적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적극 키우는 일 또한 일차적으로는 선배 사제들의 본분이겠지만 가족과 어른 신자들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깊은 신자 가정이 성소의 제일 좋은 못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또 누구나 그랬겠지만,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어떤 말을 들려주느냐보다도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귀기울이고 따릅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살아서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새 시대를 열면서 사제 한 사람마다, 그리고 각 본당 사목평의회마다, 적어도 두 사람씩의 젊은이가 예비신학생이 되도록 책임지고 애정으로 보살피며 키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노라면 어른들 자신도 삶이 달라지는 은혜를 맛볼 것입니다.
성소육성은 통일의 날과 아시아 선교에 대비하는 우리 모두의 절박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IV. 다짐과 기원
7. 밝아오는 대희년의 새 날을 맞아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십시다.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과 엄주언 말딩 회장님의 훌륭한 표양도 열심히 배우십시다.
자애로우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의 발길을 비추어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교회의 표상이신 마리아님, 구세주를 낳아주신 여인, 어머니이심만으로 충분하신 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정으로 마음에 품고 계시는 성모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느님께로 길을 가고 계십니다.
주님과 함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필립 4,4).
아멘, 오소서, 주 예수님! (묵시 22,20).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시는 구세주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