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야리 공소는 영북지역의 오래된 교우촌이다.
뮈텔주교일기와 경향잡지를 통해서 학야리 공소의 설립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뮈텔주교는 1900년 12월 4일자 일기에서, “내가 1882년에 성사를 준 일이 있는 옹기 마을 근처를 지났다. 오늘 그곳에 살고 있는 교우들이 성사를 받으러 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야동(杆城)이란 농부 마을로 왔다. 공소 집은 용산 신학생 하 바오로의 형 하 방지거 회장의 집이다.”라고 기록하였다. 1934년 경향잡지의 ‘학야리 공소의 꾸준한 발전’이라는 기사에는 “양양군 토성면 학야리 공소는 설립된 지 오늘까지 57년인바 20년 전까지는 춘추공소(春秋公所) 때면 가난한 농촌인 만큼 공소를 치루기가 매우 어렵더니 1914년에는 교우 세대 수가 6-7호였다.”라고 되어있다. 두 기록을 토대로 학야리 공소는 1877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882년 44명의 신자 수가 기록된 것을 시작으로 1910년대에는 평균 85명 정도 신자가 있었던 학야리 공소는, 1914년 공소집을 마련하고 전국 교리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할 정도로 열심인 교우촌이었으며, 지금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