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신앙 표현 뜻 깊어”
성지주일 거리 행렬, “종교 갈등” 염려도
2016.03.21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성당 밖에서 많은 신자들이 참여하는 성지 행렬을 하는 천주교 교구가 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의 도시 본당에서 성지 행렬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3월 20일 서울대교구는 마포 가톨릭청년회관과 연남파출소 일대에서 약 1킬로미터 성지 행렬을 했다. 청년 신자들을 중심으로 80여 명이 참여했다. 같은 날 춘천교구 양구 지역 4개 본당 신자 750여 명도 성지를 들고 양구 성당에서 양구문화체육관까지 약 2킬로미터를 걸은 뒤 미사를 봉헌했다.
마포에서 행렬에 참여한 의정부교구 신자 박병찬 씨(도미니코, 33, 의정부 성당)는 “성당에서 행렬을 하면 1층 로비에서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성지를 들고 거리에 나가니 매우 뜻 깊고 (의미가) 다시 한번 새겨졌다”고 말했다. 박 씨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인터뷰에서 성당 밖에서 하는 행렬에 대해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에서 뜻 깊었다”면서, “가톨릭교회에는 신앙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적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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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서울대교구 청소년문화사목부 주최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에서 성지행렬 행사가 열렸다. ⓒ배선영 기자 |
마포에서 열린 성지 행렬은 젊은이에 초점을 맞춰 서울가톨릭청소년회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이 함께 준비했다. 행렬 뒤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봉헌한 미사 강론에서 서울가톨릭청소년회 이사장 정순택 보좌주교는 이날 행사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주민들이 환영하는 시간을 전례적으로 기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 주교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1980년대 중반부터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청소년주일’로 지내며, 교황도 청년 신자들과 함께 성지 행렬을 거행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천주교는 이와 별도로 5월 마지막 주일을 청소년주일로 지낸다.
한편,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천주교가 교회의 상징을 내세우고 거리 행진을 하는 것은 아직 조심스럽다. 오지섭 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는 한국의 대표적 거리 종교행사인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 행진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차장 장원석 신부는 “경찰의 협조를 받아 무례하지 않게 서울 연남동 기찻길을 걸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천주교 신자들은 이러한 특별한 거리 행사가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알리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행렬에 참여한 박병찬 씨는 “주변에서 저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나쁘지 않았다”며 “자연스럽게 가톨릭을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춘천교구 양구 본당 주임 방기태 신부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행렬과 미사 봉헌 속에서 사랑과 용서, 일치와 화합으로 복음적 삶을 살아가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라고 교구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가 기념하는 성주간의 첫째 날로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기념한다. 사람들이 ‘승리’를 뜻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환영하는 모습은 요한 복음서 12장 등에 그려져 있다. 이를 따라 신자들이 축복한 나뭇가지, 즉 성지를 들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것은 4세기 무렵부터 시작돼 10세기 이후에 널리 전파됐다.
오지섭 교수는 한국은 종교간 갈등과 대립이 현실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획하신 분들의 신앙적, 선교적 의미 부여와 달리 의도하지 않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걱정했다. 오 교수는 “특정 종교가 자신들의 독특한 의식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조건에서 일방적으로 실시한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종교인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편치 않게 볼 수도 있다”며, 아직 한국은 각각의 종교 의식이 거리에서 행해지는 것을 포용의 시각으로 볼 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한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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