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최고(最古) 공소에서 사목하는 최고(最古) 사제 이응현 신부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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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제로 살고 싶습니다." 이응현 신부가 주일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신자들과 공소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강원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에는 춘천교구에서 가장 오래된 공소인 곰실공소(1920년 설립)가 있다. 곰실공소에는 교구 사제 중 맏형인 이응현(원로사목자) 신부가 산다. 이 신부는 사목일선에서 물러난 뒤 13년째 공소를 지키며 신자들과 함께하고 있다.'춘천교구의 요람' 곰실공소를 찾아 이 신부를 만났다. 이 신부와 곰실공소의 인연은 2000년 시작됐다. 그해 가을, 이 신부는 가평본당 주임을 마지막으로 사목일선에서 물러났다. 1953년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47년 만의 은퇴였다. 그 뒤 바로 곰실공소로 짐을 옮겼다.
한국 나이로 올해 여든여덟 살, 미수(米壽)를 맞은 교구 최고(最古) 사제가 교구 최고(最古) 공소에 머무른다니 무언가 큰 연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신부는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인연이 돼서 오게 된 것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오래 전부터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는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자'는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평생을 신자들과 함께 살았는데 은퇴하고 아파트에서 혼자 살면 정말 답답할 것 같았어요. 사람은 흙을 밟으면서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어요. 여기는 흙도 있고 나무도 있고, 풀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 신부는 공소에 오자마자 건물 곳곳을 손 보고, 비가 오면 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질척거리던 마당에는 보도블럭을 깔았다. 한 달에 두 번 있던 미사는 매 주일 아침 봉헌됐고, 평일미사까지 생겼다.
이 신부는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몸이 아픈 신자를 찾아가 병자영성체, 병자성사를 베풀며 신자들을 돌봤다. 이 신부가 온 후 조용하던 곰실공소에 활력이 솟아났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매일 새벽 봉헌되던 미사는 참례하는 신자가 거의 없어 얼마 전 사라졌지만 주일미사는 매주 봉헌된다. 농사를 짓는 신자들을 배려해 여름철에는 오전 7시, 겨울철에는 오전 9시에 미사를 봉헌한다. 평일에는 사제관 안에 마련한 조그마한 기도방에서 이 신부 혼자 미사를 봉헌한다.
곰실공소 신자 양승찬(바오로)씨는 "예전에는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신부님께서 오시고 나서 매주 편하게 미사에 참례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서 "우리 공소 신자들은 정말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곰실공소에서 사목한 11년 4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미사 시간이나 신자들과 약속 시간을 어겨본 적이 없다. 이 신부는 후배 사제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신자들과 약속은 어기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돈은 빌렸다가 갚을 수 있지만 남의 시간을 빼앗으면 절대 갚을 수 없어요. 제가 미사시간에 5분 늦으면 저한테는 고작 5분이지만 미사에 참례한 신자가 300명이라면 저는 그들 시간 1500분을 빼앗는 거예요. 후배 사제들도 시간의 소중함을 잘 깨닫고, 신자들과 약속한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으면 해요."
1925년 강원도 이천군(현재 북녘)에서 태어난 이 신부는 어린 시절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이 막연히 멋있어 보여 사제의 꿈을 키웠다. 이 신부는 "얼결에 신학교를 가서, 얼결에 신부가 됐다"며 껄껄 웃었다.
외동아들에 과부 아들이어서 당시 신학교 입학이 어려웠지만 신학교 교수로 있던 삼촌과 이미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사촌형 덕분에 소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신심이 깊었던 이 신부 어머니는 외아들의 신학교 입학을 반대하지 않았다. 단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도로 나오면 그때부터 내 아들 아니다. 신부가 되려고 마음먹었으면 반드시 돼라"고 당부했다.
사제품을 받은 후 군종을 거쳐 문막ㆍ상동(현 공소)ㆍ풍수원ㆍ소양로ㆍ죽림동ㆍ동명동ㆍ운교동ㆍ가평본당 주임을 지낸 이 신부는 2000년 춘천교구 출신 사제로는 처음으로 은퇴식을 가졌고, 2003년에는 교구 역사상 처음으로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았다.
이 신부에게는 늘 교구에서 첫 번째, 맏사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춘천교구 두 번째 원로사목자인 김정식 신부와도 수품년도가 13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동안 모신 교구장 주교만도 4명이다.
이 신부는 5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사제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사제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제생활은 어두운 긴 터널을 묵묵히 걷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빛(출구)을 향해 걷다보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요. 사제직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한눈팔지 않고 앞만 보고 간다면 잘 할 수 있어요. 자꾸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갖다 보면 힘들어지죠."
이 신부는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와 미사로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는 "사제로 살아온 지난 60여 년 동안 나의 말과 행동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며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 마음을 치료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여든여덟 먹은 노인에게 무슨 계획이냐"면서 너털웃음부터 터뜨렸다.
"그저 제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요. 처음 곰실공소에 올 때 마음먹었던 것처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신자들에게 봉사하며 신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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