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처음으로 4형제 신부 길러낸 이춘선 할머니
 | ▲ 축하미사 후 열린 축하연에서 이춘선 할머니가 6남 오세호 신부(왼쪽), 막내 오세민 신부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줄거워하고 있다. |
구순(九旬)을 맞은 한 어르신을 위해 무려 사제 10명이 모여 축하미사를 봉헌했다. 주인공은 한국교회 최초의 4형제 신부를 길러낸 이춘선(마리아, 춘천교구 임당동본당) 할머니.
이춘선 할머니 구순 축하미사가 6일 강릉 임당동성당에서 춘천교구 오상철(행복한가정운동 담당)ㆍ상현(휴양)ㆍ세호(이동본당 주임)ㆍ세민(청호동본당 주임) 신부 등 네 아들과 손자 오대석(강촌본당 주임) 신부를 비롯한 교구 사제 10명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임당동성당은 이 할머니가 1946년부터 65년째 다니고 있는 성당으로, 아들 넷을 모두 이곳에서 하느님께 바쳤다.
주일미사 빠지면 밥 안줘
30년 전 3남 오상현 신부가 사제품을 받을 때 맞춘 연노란색 한복을 차려 입고 맨 앞자리에 앉아 미사에 참례한 이 할머니는 미사 내내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내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 덕분에 지금까지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며 "기도와 희생밖에는 한 게 없는데,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셔 은총 속에 살 수 있었다"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8대를 이어온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넉넉지 못한 살림으로 7남 1녀를 키우면서도 평생 신앙생활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들 신부들은 "어머님 영향으로 사제의 길을 선택했고, 또 사제로 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맏형 오상철 신부는 "서너 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성모님 앞에 앉아 묵주기도를 바쳤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면서 "집안이 어려웠는데 어머니는 끊임없이 기도하시며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셨다"고 회고했다.
이 할머니는 신앙생활에 관해서는 무척 엄격한 어머니였다. 아들이 주일미사에 빠진 것을 알면 어김없이 매를 들고 밥도 주지 않았다. "영혼의 양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밥도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또 틈날 때마다 성인전과 같은 교회서적을 읽으며 자식들에게 신앙지식을 물려줬다.
고명딸도 수도회 들어가
이 할머니는 47살에 막내 오세민 신부를 낳았다. 오 신부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성모님께 봉헌된 아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면서 "성모님께 봉헌된 아이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오 신부가 부제품을 받을 즈음 세상을 떠났다.
이 할머니는 사제가 된 아들들에게 늘 착한 목자로 살아가라고 당부했다. 자식들이 행여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편지를 보내 지적하며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다. 6남 오세호 신부는 "그동안 어머님께 받은 편지가 수십 통에 이른다"며 "어머니는 늘 기도하는 사제, 묵상하는 사제, 어떤 일이 있어도 신자들 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 사제가 돼야 한다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 ▲ 맨 앞자리에 앉아 미사에 참례한 이춘선 할머니. |
이 할머니는 "결혼을 한 세 아들도 만약 사제가 되겠다고 했으면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헌했을 것"이라며 "하느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200살까지 살면서 다른 이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이 할머니는 현재 속초 청호동성당에서 막내 오세민 신부와 함께 살고 있다. 지금도 아들 밥을 지어줄 정도로 건강하다. 이 할머니의 유일한 딸은 마리아의 작은자매회 수녀다. 임영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