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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철씨 부부는 살아오면서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신씨 부부가 성당 마당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신부님, 건축기금이 도대체 얼마나 부족한 건가요?"
지난해 봄, 본당 설정 19년 만에 새 성전 건립을 시작한 춘천교구 솔모루본당(경기도 포천 소재)은 기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성재 주임 신부는 우연한 기회에 신의철(요한 세례자, 78)씨에게 기금 마련 바자 계획을 이야기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신씨는 여 신부에게 성전 건립비용을 꼼꼼히 물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총 건립 비용의 절반이 넘는 22억 원을 선뜻 내놓았다. 살 집만 남겨 놓고 갖고 있던 부동산을 전부 처분해 마련한 돈이었다.
"새 성전 건립은 모든 신자들의 오랜 염원이었어요. 신자들 꿈을 이루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요즘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답니다. 기부를 결심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어요. 마냥 기쁜 마음뿐이었죠."
1983년 세례를 받은 신씨는 28년 동안 솔모루본당에서만 신앙생활을 한 '솔모루성당 토박이'다. 그러기에 비가 샐 정도로 낡고 비좁은 성전을 대신할 새 성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씨는 "신자가 1800여 명인 본당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건축비를 마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부임하신 신부님마다 성전 건립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돼 늘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부는 본인 의지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족의 반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신씨의 아내 김영자(세라피나, 73)씨는 남편의 뜻을 듣고 "정말 잘 생각했다"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김씨는 "오래전 사놓았던 상가 건물 가격이 올라 생각지도 않게 분에 넘치는 재산을 갖게 됐다"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재물을 어떻게 다시 돌려드릴 수 있을까 늘 고민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 남편 말에 선뜻 동의했다"고 말했다.
북녘 출신인 신씨는 6ㆍ25 전쟁 중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아내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직업 군인이었던 남편이 타 오는, 적은 월급을 아끼고 또 아껴 한 푼 두 푼 모았다.
'부자'가 된 후에도 검소한 생활은 변함없었다. 그 흔한 차 한 대 없이 살았다. 신씨가 미사에 참례할 때 꼭 들고 다니는, 너무 낡아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가죽 가방은 28년 전 세례를 받을 때 산 것이다.
부부가 입을 거 안 입고, 먹을 거 안 먹고 돈을 모은 이유는 북녘에 두고 온 신씨 동생들 때문이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마다 신청을 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
"통일이 돼서 북녘에 살고 있던 동생 3명이 내려오면 집이라도 마련해 주려고 돈을 모았어요. 그런데 살아 있는 동안에 동생을 만나기는 쉽지 않겠단 생각이 들어요. 대신 하느님 사업에 쓸 수 있게 됐으니 오히려 잘 됐죠."
성전 건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춘천교구 다른 본당에도 알게 모르게 많은 힘을 보태온 신씨는 자신의 기부가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충실히 따르려는 마음에서였다.
신씨에게 처음 인터뷰를 청한 건 지난 여름. 하지만 완고하게 거절했다. "기부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나눔의 기쁨을 알려주려는 것"이라고 거듭 설득한 끝에 9일 성전 봉헌식을 앞두고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가진 것을 다른 이를 위해 내놓으면 얼마나 홀가분하고 즐거운지 몰라요. 손에 쥐고 있으면 불안하지만 내려놓으면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것이 돈이에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모든 걸 내놓고 빈손으로 하느님께 가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임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