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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신문"강원도에 1791년 천주교 전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9-11-13 조회수 : 2466










""강원도에 1791년 천주교 전래""






춘천교구 설정 70돌 기념 학술심포지엄서 제기









▲ 춘천교구 설정 7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참가자들이 종합토론을 하고 있다.



 춘천교구(교구장 장익 주교)가 교구설정 70주년을 맞아 9일 춘천 죽림동주교좌본당 말딩회관에서 '춘천교구 70년'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교구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금경숙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강원도 영서지역의 천주교 전래와 수용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1802년 처음으로 강원도에 천주교 신자가 이주해 교우촌을 형성했다는 기존 학설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까지는 신태보(베드로, ?~18 39)가 1802년 신유박해(1801년) 때 순교한 순교자 가족을 이끌고 용인에서 강원도로 왔다는 기록(한국천주교회사)에 따라 1802년이 천주교 신자가 강원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시점으로 알려져왔다.
 
 금 위원은 이보다 11년 앞선 1791년에 최양업 신부의 선조들이 신해박해(1791)를 피해 강원도 홍천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금 위원은 "최양업 신부(1821~1861) 조카 최상종이 남긴 '최 바시리오 이력서'에서 1791년 이후 홍천 양덕원에 최양업 신부 가문이 탄압을 피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춘천을 중심으로 한 영서 지역은 1801년 신유박해를 전후해 피란 온 신자들과 박해로 귀양 온 사람들이 교우촌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최양업 신부 일가의 이력서와 가계를 근거로 살펴보면 최 신부 5대조 최한일은 1791년 신해박해를 당한 후 동생 최한기 가문과 강원도 홍천에 머무르다가 최한기의 아내와 아들은 충청도 홍주 다리골로 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선혜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춘천교구의 설정과 해방 이후 시련과 발전'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교구 설정의 초석을 놓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활동에 대해 살폈다.
 
 최 연구원은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은 1939년 4월 25일 강원도 지역 사목을 경성대목구에서 분리해 춘천지목구로 설정하고 이 지역의 사목을 골롬반회가 담당하도록 명했다"며 "6명의 골롬반 신부가 합류해 춘천ㆍ원주ㆍ홍천ㆍ이천ㆍ평강 등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여진천(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ㆍ옥현진(광주가톨릭대) 신부는 토론을 맡았다.
 
 심포지엄을 주관한 강원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주영 신부는 "오늘 심포지엄이 교구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해보는 자리가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2009.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