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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신문춘천 소양로성당(등록문화재 제161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7-06-28 조회수 : 8731














"1- 춘천 소양로성당(등록문화재 제161호) "






반달형 외관, 부채꼴 내부 구조 '눈길'










▲ 춘천의 진산(珍山)인 봉의산 자락에 있는 소양로성당은 반원형 평면 외형이 특이하다. ▲ 주례사제와 미사 참례자의 거리를 좁힌 부채꼴형 내부. ▲ 전세권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성당 마당 나무 아래에서 담소하고 있다. ▲성당을 건축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부 야고보 신부. ▲사무실 건물 옥상에 있는 종은 성당 완공 후 서울에서 제작해 갖고 온 것이다. ◇ 소양로성당 평면 내부 구조
 한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가톨릭 문화재는 17건이다. 이 문화 유산들은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의 문화자산이자 후손에게 고이 물려줘야 할 가톨릭 문화의 보고(寶庫)다. 등록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보존관리 방안에 대한 지혜를 모으려 등록문화재를 중심으로 '자랑스런 신앙유산 - 가톨릭 등록문화재를 찾아서'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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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춘천 시내 봉의산(301.5m) 자락 소양로성당 건축현장.

 소매를 걷어부치고 일손을 거들던 신자들은 성당이 형태를 갖춰갈수록 고개를 갸웃거렸다.

 "널찍한 터 놔두고 왜 성당을 반쪽만 짓는데…." "뾰족탑은 왜 안 세워. 뾰족탑 없는 성당이 세상에 어디 있어."

 신자들이 수군거릴 만도 했다. 본당 설립 6년 만에 성당을 짓는다기에 예배당처럼 뾰족탑 높이 솟은 멋진 하느님 집을 기대했는데 형태가 이상야릇하니 말이다.

 성당 건축을 진두지휘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부 야고보(James Buckley) 신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했다. 밖에서 보면 원을 반 뚝 잘라 놓은 반달형이다. 내부는 제대를 중심으로 회중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다.

 한국 전쟁 직전에 완공된 죽림동성당을 비롯해 시내에서 봐온 교회 건물이 모두 직사각형에 종탑을 얹은 전통 고딕양식이니 '이상하게' 생긴 성당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춘천교구장 퀸란 몬시뇰과 부 신부가 흔치 않은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국 전쟁 중에 소양로ㆍ묵호ㆍ삼척 성내동에서 선교하던 신부들이 공산군에게 죽음을 당하자 그들의 순교혼이 서려 있는 터에 기념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특히 소양로본당 초대주임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 신부는 피신하라는 교구장 권유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신자와 부상자들을 돌보다 전쟁 발발 이틀 만인 6월 27일 인민군 손에 죽었다.

 집사 겸 복사인 김 가브리엘과 밧줄에 묶여 끌려가던 안토니오 신부는 "가브리엘, 자네는 처자식이 있으니 꼭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인민군 병사는 경고 한마디 없이 총을 난사했다. 그때 김 가브리엘은 목과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 자신을 끌어안고 쓰러진 안토니오 신부 덕분에 목숨을 건져 훗날 그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심사를 위해 2년 전 소양로성당(약 90평)을 정밀실사한 문화재위원들은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적절하게 혼합된 건축기법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아치형 버팀벽, 천정 몰딩 등은 교회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고전적 기법이다. 반대로 외형을 반원형 평면으로 하고, 실내외 의장과 제단 주변을 소박하게 처리한 점은 현대건축이 추구하는 단순성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또 원형창 유리화를 제대 십자가 조형과 일치시키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점이 문화재위원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화재위원들은 "당시 강원도에 지어진 교회 건축물과 비교해 특이한 점이 많아 보존가치가 높다"며 등록문화재 등록을 적극 건의했다.

 건축 당시 세숫대야를 들고 나와 터닦이 작업을 도운 최병주(도로테아, 82) 할머니는 "춘천 시내에서 죽림동성당에 이은 두번째 성당 건축이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전쟁 직후라 신자들은 노력봉사로 건축기금 봉헌을 대신했다"며 "부 신부님은 마당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인부들에게 옥수수죽을 끓여 먹이며 성당을 지었다"고 회고했다.

 성당 안팎에는 50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선 춘천 시내와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던 빼어난 전망은 무질서하게 들어선 건물에 가려 버렸다.

 굵은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뿌린 외부 벽면은 페인트칠에 덮여 있다. 또 회중석 바닥은 본래 쪽마루널이 깔려 있었으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불편을 덜기 위해 텍스트류를 깔고 무릎틀을 설치했다. 인근 미군부대에서 얻어온 두꺼운 함석을 사용한 지붕재도 세월이 흐르면서 이음매가 낡아 아스팔트 싱글로 대체했다.

 사무실 건물 옥상에 올려 놓은 큰 종도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종 표면에 '서울 福音社 特大號 製鍾 高信民生安富和 1957.7.1(서울 복음사에서 제작한 큰 종으로 믿음을 드높여 백성의 삶을 안정되고 부유하고 화목하게 하다)'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소양로본당(주임 전세권 신부)은 문화재청 등에서 지원키로 한 수리비 1억원으로 원형 보존작업에 곧 착수할 예정이다.

 전세권 신부는 "소양로성당은 건축적 가치뿐 아니라 양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벽안(碧眼)의 선교사'의 순교혼이 서려 있어 더욱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며 "또 성당을 잘 보존하면 민족 분단의 아픔과 궁핍했던 시절의 신앙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교육장소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2007. 02. 11발행 [9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