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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일보[도민시론┃종교] 사랑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작성자 : 편집실 작성일 : 2026-04-15 조회수 : 30

[도민시론┃종교] 사랑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김도형 신부

김도형 신부

지난달,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려야 했다. 장례 직후 마주한 아버지의 빈자리는 외아들인 나에게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평생 아낌없는 나무처럼 나를 지켜주시고, 무엇보다 세상을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아버지였기에, 그 부재는 더욱 깊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기도와 위로 속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분이 남기신 따뜻한 마음의 흔적은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더욱 선한 사제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한층 또렷해졌다.

교회는 얼마 전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교회 전례의 절정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토록 위대한 사건을 전하면서도 화려한 영웅담이나 눈부신 승리의 장면 대신, 뜻밖에도 ‘빈 무덤’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계셔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 바로 그 비어 있음이 부활의 첫 증거로 제시된다.

결국 ‘빈 무덤’은 예수께서 계셔야 할 자리가 죽음이 아님을 말해준다. 세상이 보기에는 십자가가 실패처럼 보였고, 사랑과 희생은 현실의 힘 앞에서 무너진 듯 보였다. 그러나 빈 무덤은 예수의 삶이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그분께서 가르치시고 몸소 보여주신 사랑이 끝내 패배하지 않는다는 사실, 사랑이 죽음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징이 바로 빈 무덤이다.

그래서 빈 무덤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부활의 선포이다. 그곳의 어둠은 이미 빛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선언이며,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이 옳다는 증거이다. 초대 교회의 신앙인들은 바로 이 빈 무덤을 보고 믿었고, 그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어 살아갔다. 그렇게 부활 신앙은 한 시대의 관념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빈 무덤은 또한 우리를 향한 초대이기도 하다.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의 삶이야말로 참된 생명과 하늘의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다시 일깨워 주는 초대였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빈 무덤을 묵상하며 깨닫게 된다. 세상의 계산은 힘과 소유와 성공을 말하지만, 하느님의 진실은 결국 사랑이 죽음을 이기고 우리를 구원한다는 데 있다는 것을.

어쩌면 부활은 멀리 있는 신비한 사건이기보다, 우리 삶을 무덤처럼 만들고 있는 돌을 치우고 밖으로 나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절망과 상처, 두려움과 증오, 체념과 무관심이 우리 입구를 막아선 돌일 수 있다. 말씀으로 계시던 주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시어 그 돌을 가장 먼저 치우셨고, 사랑과 구원의 일을 남김없이 이루어 내셨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도 그 길을 따르라고 초대하신다.

사랑은 결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이 진공을 허락하지 않듯, 참된 사랑은 반드시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고 확장된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삶의 모범과 선함의 기억도 내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며 오늘의 나를 부르고 있다.

오늘의 세상 또한 수많은 빈자리와 상처를 안고 있다. 전쟁과 폭력, 증오와 불의, 무관심과 절망이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사랑의 힘이 증오를 이기고, 선함이 끝내 패배하지 않으며, 작은 말 한마디와 작은 실천 하나가 누군가를 다시 일으킬 수 있음을 믿는 것, 그것이 곧 부활을 사는 길이다.

지금 우리를 가두고 있는 돌은 무엇인가. 우리 앞을 막아선 벽은 무엇인가. 빈 무덤이 죽음의 끝이 아니라 생명의 시작이었듯, 우리 삶의 빈자리와 상실 또한 사랑 안에서 새로운 희망의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행복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람은 사랑하도록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천주교 춘천교구 사무국장 △천주교 춘천교구 교구장비서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 법학 박사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s://www.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