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 이벽(李檗)의 춘천 방문
춘천 문인 내암 최좌해(1739~1798)는 1771년 청평산 선동암에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다. 수성(隋城) 최씨인 내암은 집안의 유훈에 따라 벼슬의 꿈을 버리고 동양철학인 경학(經學)에 매진하여 ‘내암유고(乃菴遺稿)’, ‘오서제주절의(五書諸註竊意)’, ‘예경고(禮經考)’ 등을 저술한 춘천 출신의 대학자이다.
조선 최초 천주교 신자인 이벽(1754~1785)은 조선 후기 주자학의 모순을 직시하고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던 중, 청나라로부터 유입된 서학서(西學書)를 열독하고 천주교에 대한 지식을 동료 학자들에게 전해, 후일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천주교 신앙운동이 일어나게 한 인물이다.
위 두 인물이 1771년 춘천의 모처에서 만난 사실을 내암선생은 문집에 기록했다. “낙하(洛下) 이벽(李檗)이 찾아와 보았는데, 나이 19세에 작은 명성이 있었다. 선생과 말을 하고 물러났을 때 선생이 사람들에게 말하길 “이 사람은 총명하고 기를 숭상하며, 끝내는 반드시 훌륭한 일을 할 만한 뜻이 있다. 그러나 뜻이 너무 높고 기질이 너무 맑았으며, 무릇 옥이 맑으면서도 물이 깊고, 수정(水晶)은 깨끗하면서도 너무 맑으면, 뜻이 너무 높은 사람은(太淸) 쓰이는 이가 드물었으니, 진실로 그 스승을 얻지 못한다면 장차 우리 도의 용상(庸常·범상)함을 믿는 것만 못하여 이교(異敎·천주교)의 높고 기이함에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중략) 10여 년이 지난 뒤에 구인(歐人·천주교)의 가르침이 과연 세상에 행하여졌으니, 실로 이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이벽이 최좌해를 찾은 것은 1777년 ‘천진암 강회’보다 이른 시기였으며, 1784년 세례를 받고 본격적인 전교에 앞서 춘천을 방문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 기록을 통해 이벽의 전교 활동 시작을 기존 시기보다 당길 필요가 있다.
당시 춘천지역에서도 천주교 사상이 피어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인 것이다. 또한 최좌해가 본 이벽의 인물평은 상당히 자세했다. 정확하게 예언한 것에 놀라울 뿐이다.
한희민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전문위원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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