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진 칼럼]당당한 삶
발행일 2020-09-08 제18면
삶은 나자신이 중심 힘든일 겪어도
주어진 여건하에 지킬방법 찾아야
경험상 '주변의 진상'들은 안변해
그럴땐 '무시·긍휼의 법칙' 적용을
부당 처사 분명한 시정 요구 내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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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
한 청년이 코로나 때문에 밥벌이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이 한시적으로 폐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덩달아 휴직할 수밖에 없었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급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겨우 어느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며칠 후, 한 손님이 아이스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사장님에게 배운 대로 만들었는데 돌아오는 말이 이랬습니다. "너무 차가워 머리가 아플 지경이네요. 다시 만들어주세요." 당혹스러운 속내를 감추고 다시 커피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또 커피가 너무 미지근하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도 못 만들면서 카페에서 일하느냐, 사장 나오라고 해라 등등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퍼부으며 말입니다. 결국 사장이 와서 환불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청년이 당한 수모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돌아간 뒤 사장으로부터 환불한 커피 값을 아르바이트 비용에서 차감하겠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진상 손님에게 시달린 것만도 힘들었는데, 사장으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나니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우니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진상 손님에게 시달린 것도 힘든데, 억울한 손해까지 입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서러울지 십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주어진 여건 안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삶을 영위할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 주변인들에게 마음을 다치는 일이 거듭되면 결국 이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내 삶을 망치고 맙니다. 매일 겪는 힘든 일들을 상처가 아닌 보람으로 바꾸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겪은 일을 통해 내가 배우고 얻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 보면서, 내일은 조금 더 강한 내가 되리라 다짐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주변인들과의 관계 정립도 다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험으로 비춰볼 때 소위 '진상'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대할 때에는 일명 '진상 불변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첫째, 무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끝까지 그저 "예"라고 응대하는 것입니다. 속으로야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겉으로는 "예" 하며 무시하는 마음가짐으로 무장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둘째, 그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각자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랐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대부분은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를 무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사람을 성숙한 내가 좀 봐준다는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대해보십시오. 이 두 가지 지혜를 갖추면 몰상식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청년의 경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사장의 처우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직원의 실수가 아님에도, 그런 비인도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법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청년의 입장에서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부당한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후회를 넘어 자책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당한 처사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자존심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며 보람을 만드는 기둥입니다. 코로나라는 재앙이 생계의 어려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스스로 부당한 처우를 받도록 방치해선 안 됩니다.
인생은 변화무쌍합니다. 좋은 일도 있고 불행한 일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거친 파도 위에 있든 순풍을 타고 있든 흔들림 없이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한 청년을 소개했지만, 그의 모습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나를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당당한 삶을 살게 되고 어떤 위기도 보람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경인일보 원문보기: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00905010000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