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근본적 전환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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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강우일 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제주교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피조물 수탈과 착취의 삶부터 반성해야
기후위기는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 위주의 결과
한국판 그린뉴딜, 성장 위주 악순환 초래 우려
자본과 생명, 성장과 탈성장 사이에서 결단해야
지구와 피조물을 살리는 자발적 가난 받아들여야
[인터뷰 전문]
코로나19 대유행과 기록적인 장마와 태풍으로 기후위기의 경고음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생태계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인데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이자 제주교구장이신 강우일 주교 연결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극복방안 등에 관해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강우일 주교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강우일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최근에 이상기후로 인한 심각성을 어떻게 느끼시고 계십니까?
▶다른 지역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금년에 장마가 굉장히 너무 오래 지속이 돼서 제주는 특히 그전부터 습도가 높은 지역이 됐는데 이번에는 아주 더 피부로 그걸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열대야가 계속 반복되고 있어서 밤에 자는 것도 힘들고요.
▷가톨릭교회는 2015년부터 9월 1일을 <피조물을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고 있는데요. 올해 담화 제목이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입니다. 근본적인 전환의 출발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겠습니까?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을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내셨는데 그 교서에 가장 핵심적인 것이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인간중심으로 너무 문명을 아주 강하게 끌고 왔고 그래서 인간 이외에 다른 지구상의 피조물들과 생명체들 아니면 비생명체에 대해서도 너무 사정없이 그들이 갖는 지구상의 존재와 역할과 위치가 있는데 그런 것을 돌보지 않고 그냥 인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무차별 남용하고 왜곡하고 약탈하는, 피조물들과 공존하는 삶이 아니라 피조물을 수탈하는 하는 소유자로서의 삶을 우리가 살아왔다. 거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거든요. 교종님의 기본적인 자세가.
그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에도 코로나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사스나, 메르스, 에볼라 이런 여러 비슷한 바이러스의 출현들이 이어졌고 그러면서 더 극심하게 나타난 게 이 코로나인데 그 원인은 세계 많은 석학들이 지적하기를 이것은 결국 인간이 자연을 너무 무차별 개발하고 성장 위주의 정책을 써서 끌고 왔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결국 인간 중심의 이익 추구, 이윤 추구. 그 바탕에는 결국 자본주의의 경제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그런 세계관. 이것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으니까 이것부터 좀 우리가 사고의 전환을 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자본과 경제를 끝까지 그걸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 지구, 우리와 공존하는 피조물, 생명체들의 생존과 가치를 우리가 함께 생각할 거냐. 성장이냐, 탈 성장이냐. 또 자본이냐 생명이냐. 이런 선택을 지금 해야 되는 아주 중대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근본적인 전환입니다.
▷담화에서 지난 7월에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에 관해서 크게 우려를 하셨던데요. 가장 우려되는 점 혹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러니까 정부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그린뉴딜이라고 하는 것의 핵심은 에너지를 좀 덜 쓰는 그 에너지에 대해서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새로 개발을 해서 그쪽으로 나아가면 지금보다 훨씬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안목인데요. 그런데 이것은 또 그런 식으로 좀 더 에너지 효율이 있는 새로운 시스템과 기계를 만들어 내려면 거기에 또 엄청난 생산 에너지가 필요한 거죠. 그러니까 그거는 그 에너지를 덜 쓰자고 하면서 또 새로운 에너지를 써야 되는 그러한 아주 악순환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고 5G 같은 새로운 이동통신을 이용해서 실제로 여러 가지 아날로그적인 기계를 대체할 수 있는 길을 모색을 하는데 인터넷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실은 지금 비대면이니 이렇게 여러 가지 온라인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비대면으로 가자. 화상회의를 하자. 원격 모임을 갖는다. 이러는데 이게 이렇게 온라인으로 일을 추진을 하면 지금 어쩔 수 없지만 실제로는 온라인을 유지하기 위한 인터넷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는 유선으로 하는 거. 오프라인으로 하는 것보다 10배의 에너지를 더 소모를 하게 된다는 게.
▷그 에너지를 통한 탄소배출량도 만만치가 않고요.
▶더 늘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불난 집을 고쳐서 새롭게 지어야 되는데 그것이 또 더 불이 잘 나는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어버린다면 이것은 악순환이라고 할까 자가당착에 빠지는 거죠.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그레타 툰베리요. 기후위기와 생태적 파괴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회적인 위기를 위기처럼 다루는 것이라고 지적을 했던데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세계 각국도 그렇고 시민들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아마 당장 그 위기가 자기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 아마 위협을 위협으로서 못 받아들이시는 것 같은데 실제로 태평양 쪽에 작은 섬들에 사시는 분들은 그거를 자기 생활에 직접 생존에 문제가 되고 자기 집이 물에 잠기고 자기 땅이 사라지고 밭에서 지금 까지 채소를 가꾸던 밭에서 밑에서 바닷물이 솟아오르고 하니까 이주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니까 이런 분들은 위협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당장의 그런 것이 직접 아직 다가오지 않으니까 피부로 못 느끼는 게 한 가지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는 우리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생활양식의 패턴. 그러니까 끊임없이 우리가 자동화되고 기계화되고 하면서 안락하고 편리하고 그런 삶에 너무 우리가 익숙해지고 젖어 있어서 그거를 포기한다는 게 상상이 안 가는... 지금 그런 운영 전체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하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위기니까 이게 아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닌가 우리들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한 자각 또 쇄신 없이는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교종께서 말씀한 것처럼 어떤 생태적 회심, 회개는 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주교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국가 차원의 쇄신 또 개인, 신앙인으로서의 쇄신, 어떤 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를 결국은 에너지 효율이 좋은 새로운 기계를 발명해서 쓸 게 아니라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덜 쓸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게 관건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방에 정말 간단한 거지만 각 개인이 전등을 될 수 있는 대로 덜 켜고 불을 덜 밝히고 또 여러 가지 기계에 쓰는 것도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자동차도 덜 타고 되도록 걷고 또 육식, 육식이 굉장한 온난화에 직접적인 원인이거든요.
지금 전 세계의 자동차나 이런 데서 쏟아내는 매연가스가 지구 온난화 온실가스에 기여하는 것보다 오히려 동물들을 우리가 키움으로서 소나 돼지 이런 것들에서 나오는 매탄가스가 오히려 더 온실가스의 큰 요인이 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옛날에는 그렇게 우리가 육식을 안 했죠, 우리 국민들도. 제사 때나 고기 얻어먹을까. 평소에는 그냥 채식이 주로 주였었는데 지금은 이게 고기가 없으면 반찬이 아닌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인식을 하고 고기가 없으면 고기반찬이 없으면 젓가락이 안 가고. 그러니까 이런 것에서 부터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고 부족함을 감내하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난을 우리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그런 복음에서 예수임이 말씀하실 때하고는 차원이 다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그러나 오늘 이 지구와 우리 피조물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런 의미의 가난, 적극적인 자발적인 가난 우리가 덜 쓰고 좀 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런 의미의 가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되지 않는가.
▷덜 쓰고 아끼는 그런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세계적인 펜데믹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이렇게 방역 수칙을 어기고 또 코로나 19 확산시키고 가짜뉴스 만들어서 국민 분열시키는, 이렇게 불안을 키우는 분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데요. 주교님께서는 현재 이런 상황 어떻게 지켜보고 계십니까?
▶참 안타깝고 왜들 그러는지 저도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을 또 이렇게 너무 우리가 몰아세우고 사회의 적으로 바라보고 혐오감을 우리가 자꾸 확산시키는 것도 그것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그분들이 좀 더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면서 최소한의 다른 공동체 전체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자신들의 주장이나 생각이 있더라도 그거를 거둬들이고 우리 국민 전체의 건강을 더기 위해 생각을 해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지금 공동체 미사가 또 중단이 되는 교구들도 적지 않고요. 지금 교회로 돌아오지 못한 신자들도 많고 신앙의 단절로 느끼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지난 4월에 <코로나 이후에 교회는 어디로>라는 제목의 사목 서한도 발표하셨는데요. 코로나 이전에 공동체, 예수님 시대의 친교를 회복할 수 있을까. 교회는 이 시대에 어떻게 존재를 해야 하겠습니까?
▶지금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에 과연 잠잠해질지도 지금 모르는 그런 상황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존재하려면 다른 인간과의 관계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절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교도소에 가 봐도 가장 교도소 자체가 굉장히 우리 비인간적인 장소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심한 형별이 독방이거든요. 혼자 있는다는 게 인간에게는 도저히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가응하지 않은 그런 상황이 되는 거죠. 코로나 때문에 지금 우리가 만남을 자제하고 자숙하고 직접적인 만남보다는 비대면으로 또는 원격으로 화면으로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인간, 우리가 인간으로서 정신만이 아니라 육신과 정신이 함께 어우러져서 인간인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냥 전화나 아니면 화상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고 역시 가까운 거리에서 피부로서 이렇게 상대방의 현존을 느끼고 듣고 보고 하는 그런 가까운 친교와 소통은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하게 할런지는 좀 더 우리가 고민을 해봐야 될 과학자들이 새로 개척해내야 될 부분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람은 만나야 됩니다. 만남을 제거하고서는 우리 인간 사회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뉴노멀의 상황에서 앞서 관련된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뉴노멀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사제들 또 길을 잃은 신자들에게 어떤 위로와 당부의 말씀을 좀 전하고 싶으십니까?
▶신부님들도 이런 상황에서 정말 신자들 사목하는 데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느끼시고 여러 가지 당혹감과 암담함을 매일 체험하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용기를 내고 과거에 인류가 이런 것보다도 사실 더 큰 재앙과 시련을 맞닥뜨려서 많은 희생자도 있었지만 또 그걸 딛고 일어서서 오늘날까지 우리가 살아왔고요. 그러니까 용기들을 내시기 바라고 또 교회는 직접적인 엄청난 박해의 시대도 우리가 거쳤고 그래서 좀 그런 것을 다 이겨내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동반해 주셨고 지켜 주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당히 뭐 벌써 8개월 넘게 지속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용기를 내시고 또 신자 분들도 용기를 내시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시련에서 빨리 당신의 굳센 팔을 펼치셔서 이끌어내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이시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이신 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주교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원문 링크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786463&path=20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