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주교회의[사진]종교기자단 현장취재 (1) 소록도 풍경

작성자 : 문화홍보국(언론/홍보) 작성일 : 2016-05-11 조회수 : 834

[사진]종교기자단 현장취재 (1) 소록도 풍경

주교회의 홍보국은 2016년 4월 25-26(-전남 고흥군 도양읍에 자리한 소록도에서 교계와 일간지 종교 담당 기자단의 천주교 현장 취재를 미디어부 주관으로 진행했다이번 현장취재는 국립소록도병원 설립과 소록도 한센인 정착 100년을 앞두고소록도가 고통과 아픔의 땅에서 치유의 섬으로 탈바꿈하는 데에 이바지한 천주교의 역사와 현황을 언론매체에 소개할 목적으로 이뤄졌다취재 내용과 사진을 2편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관리자>

소록도의 천주교 역사는 1935년 3명의 한센인 교우가 소록도 갱생원에 입원해 환자들에게 전교하면서 시작됐다1938년 첫 세례식이 거행되어 새 신자 3명이 탄생했고1943년 병사에서 첫 미사가 있었다. 이어 병사관사(직원지대에 각각 공소가 설립됐다

공소는 1960년 소록도 본당으로 승격됐다1961년에 관사(현 1번지성당이1962년에 병사(현 2번지성전이 완공됐다한센인 신자들이 바닷가의 모래를 직접 퍼나르고 벽돌을 쌓아올린 결실이었다초기에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1968년부터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가 본당을 관할했다1997년부터 강길웅 신부를 시작으로 광주대교구 사제들이 부임하기 시작했다

한센인들과 반세기를 지내온 두 성전은 2011(2번지), 2015(1번지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자비의 희년 개막(2015년 12월 8일)을 앞두고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교구 내 10개 성당을 희년 순례 성당으로 지정했는데, 중남부지구에서는 소록도성당이 선정됐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 순례를 떠나기 어려운 환우와 직원들의 처지, 소록도에서 피정을 하는 신자들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소록도 1번지 성당. 국립소록도병원 직원들이 거주하는 관사 지대의 성당이다. 30년 가까이 사목했던 멕시코 출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신부들을 기억하며 스페인 풍으로 성전을 개축했다. 성당 왼편에는 아기사슴 피정의 집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1번지 성당 내부. 제단 배경의 천정에 반구 형태로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됐다. 바다에 둘러싸인 소록도 위에 붕대로 감은 십자가를 세우고, 하느님께서 환우들과 함께 아파하며 흘리시는 눈물을 형상화했다. 제대 전면 중앙에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 한센병에 감염돼 선종한 성 다미안 신부의 유물을 안치했다.



▲소록도 2번지(병사) 성당. 2016년 4월에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로 등록 예고돼, 1개월의 유예 기간을 지낸 뒤 정식 등록될 예정이다.



▲2번지 성당 내부.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방문, 한센인 환우들을 만나신 장소이다. 왼편의 의자는 당시 교황께서 앉으셨던 의자다. 중앙 제단 윗부분의 십자가는 교황께서 선물하신 것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40여 년간 소록도에서 환자들과 한센인 자녀들을 간호한 소록도의 할매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살던 집은 1번지 성당에서 서쪽으로 600m 거리에 있다. 1938년에 지어졌고 2015년에 복원공사를 거쳐 새단장한 이 집은 소록도 병사 성당과 함께 문화재 등록 예고됐다.

소록도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된 것은 1994년부터다소록도 아기사슴 피정의 집은 2003년에 완공됐다소록도에 피정을 온 순례자들은 일반인 개방구역인 중앙공원 외에도 한센인들의 눈물이 밴 역사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제비선창과 치유의 길이다





▲환우 전용 부두였던 제비선창(위 사진에서 가장 먼 곳). 환우들은 직원들과 같은 항구를 쓰지 못하고 바닷길을 멀리 돌아 입도해야 했다. 교황 방문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소록도에 집중되면서 미국 NBC는 한센인 차별의 증거인 제비선창의 존재를 보도했고, 병원장은 제비선창의 폐쇄를 결정했다. 직원들과 같은 배, 같은 부두를 이용하게 된 것을 한센인들은 교황의 선물로 여겼다. 1990년대에 태풍이 소록도 북쪽 해안을 강타한 뒤, 제비선창은 부서진 채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게 되었다.



▲소록도의 서쪽을 감아 돌아가는 ‘치유의 길’은 피정자들이 환우들의 눈물에 자신의 아픔을 비추어보는 길이다. 원래는 1930년대에 소록도 갱생원의 수호 마사키(일본인) 원장이 원생들의 탈출을 막으려고 전체 원생들에게 노역을 시켜 닦은 길이었다. 1937년 중.일 전쟁으로 병원 운영비가 전쟁비용으로 전용되고 강제노역이 자행됐다. 수풀이 우거진 서쪽 바다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원생들이 늘자, 수호 원장은 1938년 1월, 원생들을 다그쳐 20일 만에 4km의 길을 완공했다. 
사진 오른쪽의 건물은 1978년에 지은 결핵 환자 병동이다. 전염 예방을 위해 지어졌으나, 결핵에 걸린 환우들에게는 이중 격리의 아픔이 밴 곳이었다.



▲치유의 길 중간 지점, 절벽에서 바라본 해질녘의 바다. 



▲치유의 길 옆에 있는 교도소 건물. 한센인 수형자들을 수감할 목적으로 1935년에 지어졌고 70여 년간 운영되다가 지금은 폐쇄된 상태다.



▲일반인 개방 구역인 소록도 중앙공원에는 십자가 모양의 정원이 있다. 1930년대 이곳에는 벽돌공장이 세워져, 요양소 확장공사를 위해 환우들의 노동력을 동원해 벽돌을 찍어냈었다. 1961년 국립소록도병원장으로 부임한 군의관 조창원 씨는 한센인 자녀들을 돌보던 수녀에게 루르드 성모 발현에 대한 책을 받아 읽은 뒤, 환우들을 위로할 십자고상과 성모 동산 건립을 결심한다. 성모 동굴은 1962년, 십자고상은 1964년에 세워졌다. 억압의 장소였던 벽돌공장 터가 위로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현장취재 관련기사 목록 링크 = http://blog.naver.com/cbckmedia/220699155382 


자료출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디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