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오늘은 2005년 4월 25일 선종하셨고, 지난 4월27일 성인품에 오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에 교황에 선출되었고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한 분으로 기록됩니다. 전 세계 129개국을 방문하며 사람들을 격려하셨기에 '순례하는 교황'으로도 불렸습니다. 평화의 사도로 인류 화합과 평화를 위해 일하시며 세상의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돌아가시전에 남긴 유언장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유언장 전문
(번역: 홍기선 신부)
로마, 1979년 3월 6일
저의 모든 것은 오로지 당신 것이 옵니다(Totus Tuus ego sum)
성삼의 이름으로 아멘.
“늘 깨어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4,42) - 이 말씀은 주님의 마지막 부르심을 상기하도록 저를 이끕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그 마지막 부르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을 따르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에, 이 지상 삶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길 원합니다.
저는 그분께서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지금 이 순간 저의 스승이신 어머니의 손에 저를 의탁 합니다: 저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어머니의 손에 모든 것을 의탁합니다. 저의 성소와 삶에 함께 했었던 협력자들 모두도 당신 손에 맡깁니다. 특히 교회와 저의 조국(폴란드) 그리고 전 인류를 당신 손길에 의탁합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저의 약함과 부족함 속에서도, 참으로 위대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피정 중에 바오로 6세 교황님의 유언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유언장은 저로 하여금 이글을 쓰도록 자극하였습니다.
제가 죽은 뒤, 정리해야 할 어떠한 재산도 없습니다. 제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물건들은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처분하십시오. 개인적인 메모들은 모두 소각해 주십시오. 저의 개인 비서인 사제 스타니슬라오가 이 모든 것을 참관하여 진행해 주시길 청합니다. 그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참으로 넓은 마음으로, 내게 도움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해야 할 많은 감사의 인사는 가슴 속에 간직하고,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겠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다 거론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장례에 대해서는 ,바오로 6세 교황님이 주셨던 규정을 그대로 따르겠습니다(옆의 공란에 다음과 같은 글을 후에 추가하여 적었다: 대리석 관에 넣지 말고 땅에다 묻어주십시오 92년 3월 13일). 무덤의 장소는 추기원과 폴란드 관계자들이 결정하도록 하십시오.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나이다.”
(apud Dominum misericordia et copiosa apud Eum redemptio)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마 1979년 3월 6일
죽은 뒤 미사와 기도를 부탁합니다.(1990년 3월 5일)
날짜를 적지 않은 종이:
저의 가장 깊은 신뢰를 다음과 같이 표합니다. 비록 제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인 저의 삶 동안, 허락하신 모든 과제와 시험과 고통을 맞설 수 있는 은총을 제게 주십니다. 이것에 대한 깊은 믿음이 제게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이 베드로좌에서 말과 일과 혹은 궐함으로 나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으십니다.
1980년 2월 24일-3월 1일
이 피정동안 저는 우리들 각자가 맞게 될 죽음은 죽음이 아니고 옮겨감이라는 주제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진리를 묵상했습니다. 미래의 세상에서 새로 태어나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 이 웅변적인(결정적인 – 글 위에 첨가하였다) 표지는 우리에게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됩니다.
저는 피정기간 동안 제가 최근에 작성한 유언장을 읽었습니다 - 저는 저의 유언장을 전임자이셨던 위대한 바오로 6세 교황님의 그 숭고한 유언장(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교황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과 비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979년 3월 6일 잠정적으로 작성된 저의 유언장의 내용을 양심에 비추어 다시 갱신하였습니다.
오늘 그 유언장에 단지 다음의 내용을 추가하길 원합니다. 누구나 예견되는 죽음에 대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심판관이고 동시에 구세주이시며 아버지이신 주님 앞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저도 이것을 끊임없이 되뇝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고 교회의 어머니이신, 그리고 제게 희망의 어머니이신 그 분께 (삶의) 결정적 순간을 의탁하며, 이 모든 것을 명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언어로 이루 다 형언하기 어렵고 불안정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의 여정을 함께하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목자들도 이 시대가 지닌 특징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어렵고 긴장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현재, 몇몇 나라의 교회는, 초세기 때의 신자들 숫자보다도 적은 신앙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박해를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에 대한 증오와 잔인함은 초대 교회 때 보다 더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들에서도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총에 제 자신을 온전히 다시 한 번 봉헌하길 원합니다. 그분께서는 이 지상에서의 저의 삶과 사목직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끝맺어질지를 결정하실 것입니다. 제가 살아있던지 죽던지 간에 모든 것을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통해 온전히 당신께 봉헌합니다. 지금, 이미 이렇게 다가온 죽음의 실재를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께서 제게 이 마지막 관문을 통해 부활을 가능케 하는 은총 주시길 희망합니다. 또한 제가 지금 봉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구원과 참다운 가정의 보호 그리고 그것을 통한 모든 민족과 국민들(그들 가운데 특별히 나의 조국을 생각합니다)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위해서도 저의 죽음이 유익한 것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법으로 내게 맡겨준 사람들과 교회의 문제를 위해서, 나아가 같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참으로 유익한 것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1년 전에 썼던 내용에 더 이상 무엇을 첨가하길 원치 않습니다. 오로지 이번 피정이 나를 더욱 준비된 자로 그리고 더욱 큰 신뢰를 갖도록 만들었다는 사실만 언급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1982년 3월 5일
금년 피정 중 저는 여러 차례 1979년 3월 6일의 유언장을 읽었습니다. 비록 확정적인 것이 아닌 잠정적인 유언장입니다만, 저는 그 형식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 유언장에 수록된 내용을 지금 바꾸고 싶지도 않고 더 첨가하고픈 내용도 없습니다.
1981년 5월 13일, 나의 생명이 침해당했던 그 사건은 어떤 면에 있어서 1980년(2월 24일-3월 1일) 피정 때 기술했던 내용을 확인해준 셈이 되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주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져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낍니다. 계속해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도우심을 간청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82년 3월 5일
저의 1979년 3월 6일의 유언장 내용의 마지막 부분( 장소 즉, 장례 장소에 대해
추기경단과 폴란드인들이 결정하십시오)에 대해 제 생각을 분명히 밝힙니다: 추기경단은 크라코비아 관구 혹은 폴란드의 주교 평의회에서 어떤 사항을 요구한다면, 가능한 한 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85년 3월 1일(피정 기간 중)
제가 사용한 용어, “추기경단과 폴란드인들”에 관해 계속해서 말씀드립니다. 추기경단은 이 주제에 대해 폴란드인들에게 의견을 요청해야 할 어떠한 의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다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2000 희년의 피정(3월 12일-18일)
유언장
1. 1978년 10월 16일에 추기경 회의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저를)를 뽑았을 때, 폴란드의 스테파노 위스진스키 수석 추기경은 제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교황님의 숙제는 교회를 3천년기로 진입시키는데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말을 정확히 옮겼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 때 내가 느낀 의미는 적어도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제게 말씀하신 그분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위대한 추기경이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임무수행과 그분의 온전한 의탁, 즉 그분의 투쟁과 승리의 증언자입니다. “언젠가 승리가 우리를 찾아올 것인데 성모님을 통한 승리가 될 것입니다” 그분의 선임자 아우그스토 론드 추기경의 위의 말은 그 추기경을 다시 한 번 높이 평가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게 제시된 1978년 10월 16일의 과업을 준비하였습니다. “2000년 대희년” 이 말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저는 모든 것이 벌써 현실이 되었음을 절감합니다. 1999년 12월 24일 밤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대희년 문이 열렸고, 뒤이어 라떼라노의 성요한 성당 문이, 그리고 성마리아 대성당 문이 정초에 열렸습니다. 그리고 1월 19에는 성 밖의 성바오로 성당 문이 열렸습니다. 최근의 이 큰 행사들은 교회일치의 성격을 지니면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 2000년 희년은 날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여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저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 과거로 지나가는 이 힘든 세기를 살도록 하셨는데, 현재 세속의 제 나이가 여든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므온이 했던 말(이제는 제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의 일반 알현 때, 저를 저격한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날에, 주님께서는 당신 섭리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저를 죽음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주님께서 제게 생명을 다시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저의 생명을 오늘까지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더욱 그분께 속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1978년 10월 16일 이 직무로 부르신 주님께서 이 봉사를 계속해야하는 날까지 도움 주시길 기도합니다. 살아있을 때나 죽음 가운데서도 우리는 주님께 속해 있다는 시편의 말씀처럼,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 저를 당신 나라로 다시 불러주시길 희망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 베드로의 직분을 완수하도록 내게 맡기신 주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날까지 이 직무에 걸맞은 힘을 주시길 희망합니다.
3. 언제나처럼 매년 피정 때 저는 1979년 3월 6일 작성한 저의 유언장을 읽습니다. 그 유언장에 쓴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해왔습니다. 그 당시와 계속 되었던 피정 때 마다, 80년대의 어렵고 긴장된 일반적 상황의 숙고물들이 그 내용으로 첨가되기도 했습니다. 1989년 가을부터 이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지난 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앞의 긴장들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문제나 어려움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특별한 방법으로(이것으로 인해 주님을 찬미합시다) 우리가 “냉전”이라 부르던 그 시기는(세상을 위험으로 내려 누르던) 핵전쟁의 폭력 없이 끝났습니다.
4. 3천년기의 문턱에서 그리고 교회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큰 선물을 주신 성령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공의회로 말미암아 온 교회, 특히 모든 주교들과 저는 채무를 지고 있다고 느낄 만큼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아주 오래 동안 새로운 세대들이 이 20세기의 공의회로부터 엄청난 풍요로움을 길러낼 것입니다. 이 공의회에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주교로 참석한 저는 이 엄청난 유산을 미래에 이를 실현할 모든 사람들에게 맡기길 희망합니다. 저는 저에게 지금까지 교황직에 재위하는 동안, 이 위대한 사업에 봉사토록 허락하신 영원한 목자에게 감사드립니다.
교회 중심에서...주교직에 첫 몇 해부터 - 정확히 공의회 덕분에- 저에게 주교직의 형제적 친교를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크라코비아 대교구의 사제로서 형제적 일치가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이 공의회는 이와 같은 경험의 새로운 측면을 체험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5. 얼마나 많은 사람을 여기에다 열거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주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상당수를 이미 당신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유언장의 말씀으로 세상 어느 곳에 있던지 간에 기억되길 원합니다. 제가 이 베드로의 직분을 교회 한 가운데서 수행하기 시작한 20 여 년 전부터 저는 참으로 인정 많고 풍요로운 능력을 지닌 많은 추기경님들과 대주교님들 그리고 주교님들 , 많은 사제들, 많은 수도자들 그리고 교황청과 로마교구의 많은 평신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찌 감사의 마음 없이 사도좌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전 세계의 주교들을 포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들, 비 그리스도인들 역시 저는 감사의 정을 느끼며 포옹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유대교 랍비, 수많은 비 그리스도교의 대표들에게도 역시 감사의 정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문화와 과학과 정치와 사회 통신 매체의 대표들을 제가 기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6. 이 지상에서의 저의 삶이 이제 마지막에 도달하였음을 느끼면서, 저는 저의 첫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저의 부모님들과 저의 형제와 누님(저는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례 받은 바도비체의 본당, 나의 사랑이 숨 쉬는 그 도시, 동년배, 동료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의 친구들, 제가 직공으로 일할 때의 동료들, 그리고 니에고빅 본당, 성 플로리아노의 크라코비아나 본당, 학생으로서의 사목생활, 그 환경..크라코비아와 로마 ... 그 모든 이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께 의탁합니다.
모두에게 다음의 한마디를 전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그대들에게 상 주실 것입니다” “주님 당신 손에 제 영혼을 맡기나이다”
2000년 3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