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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과 로마교구 사제들과의 만남

작성자 : 홍기선 작성일 : 2013-09-18 조회수 : 2202

이틀전에 교황님께서 로마 교구의 사제들과 만나 2시간 정도 대화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좋아 번역해 보았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밑에 그 장면도 링크로 걸어 놓았으니, 동영상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교황님과 로마 교구 사제들의 만남

(2013916)

 

 

 

2013916, 교황 프란치스코는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전에서 총대리 추기경 Agostino Vallini와 로마 교구의 성직자들을 만났습니다. 교황님은 일전에 한 원로 사제로부터 받은 편지(교황에게 마음의 피로에 대해 언급한 편지)를 인용하며 당신의 담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사제에게 그리고 주교에게(로마의 주교도 마찬가지) ‘피로(疲勞)’란 무엇인가? 업무 때문에 느끼는 피로, , 좋습니다.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저녁이 오면 일 때문에 피곤합니다. 이 때에는 주님 뵙기 위해 감실 앞으로 나아갑시다.” 교황님은 감실 앞으로 언제나나아갈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만남(로마 사제들과의)은 약 두 시간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이 텍스트는 요약분이고 진하게 쓰인 부분은 비디오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어떤 사제든 신자를 만나면, 피곤해 집니다. 그런데 그 사제가 신자를 만나지 않으면, 피곤해 질뿐만 아니라 언짢아지기까지 합니다. 잠들기 위해서는 수면제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반대로 신자를 만나는 것, 여러 가지 요구를 거듭해 대는 신자들(따지고 보면 하느님의 요구지요, 안 그래요?) 때문에 생긴 진짜 피로감, ~ 이때는 수면제가 필요 없어요.”

 

그러나 궁극적 피로가 있습니다. 인생의 석양이 사라지기 직전, 약간의 빛이 어둑어둑 주변을 비출 때, 갖게 되는 궁극적 피로가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할 때에, 역으로 찾아드는 피로입니다. 이것은 사제가 자신의 실존에 대해 의구심을 지닐 때 발생합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지나온 여정을 숙고하며, 자녀까지 포기한 삶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 묻습니다. 혹시 내가 실수한 것 아닐까, 혹시 나의 인생은 망한 것 아닐까, 이때에 발생하는 것이 궁극적 피로입니다.”

 

교황님은 바로 이 피로라는 주제에 대해 말씀하시며, 성경 속에서 모세로부터 엘리야까지 그리고 예레미야부터 세례자 요한에 이르기까지 몇몇 인물들을 인용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감옥의 어둠 속에서 그의 영혼의 어둠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파견하여 묻게 하였습니다. 과연 그들이 기다리던 분이 맞는지 묻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과 같은 삶의 체험을 하고 있는 사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하십시오. 감실 앞에서 잠들어 떨어질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곳에 머무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제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특히 주교와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우리 주교들은 사제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애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사제들입니다. 주교의 가장 가까운 이웃들은 사제들입니다. 거꾸로 이야기해도 맞는 이야기죠, 안 그래요? 사제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주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요, 가장 가까운 이웃! 이웃 사랑,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나의 주교입니다(사제들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들은 나의 사제들입니다. 이 교환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렇지요?”

 

저는 믿습니다. 주교와 사제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순간은 가까이(친밀감을 느낄 때)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이 피로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황님과 참석한 사제들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참석한 사제들에게 어떤 것이든지 자유롭게 질문하도록 하셨습니다. 첫 질문에 답변하시면서, 교황님은 다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목적 봉사를 할 때, 창의력과 또 다시 무엇을 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창의력(창조적인 것)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길을 찾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쉽지 않습니다. 창의력은 단지 무엇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기도를 통해 얻어집니다. 그리고 신자들과 군중들, 그들과 대화하면서 얻어집니다.” 교황님은 당신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주교로 있을 당시의 경험을 상기하셨습니다. 그 당시 한 사제가 어떻게 하면 그의 본당을 좀 더 편안한 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경험을 말씀하셨습니다.

 

~ 많은 사람이 성당을 방문한다면, 그리고 성당이 하루 종일 열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지, 좋은 생각이 있다! 항상 준비된 고해사제가 있다면 좋을 거야.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좋은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잘 되었습니다.”

 

이것은 용기 있는 창의력입니다.” 예비자 교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주간 내내 일하고, 주일이면 쉬어야 하는 어머니, 아버지들의 장애 조건도 극복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평신도들에 의해 운영되는 그런 구역의 선교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목적 전환(회개)입니다. 교회는, 교회법에서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길을 찾도록 우리에서 많은 가능성과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어떤 것을 위해 본당에 올 때, 그들을 환대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교황님은 엄하게 다음과 같은 사람을 비판하셨습니다: 본당에서 신자들을 멀어지게 하며, 성사 증명서를 위해 돈을 요구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 “친절한 환대가 필요합니다. 성당을 찾는 사람은 그곳을 그의 집처럼 느껴야 합니다. 좋게 느껴야합니다. 착취당하고 있다고 느껴서는 안 됩니다.”

 

한편, 만일 대중이 경제적 이득이 (사목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주교로 계실 때, 단순히 자신을 사제로 규정하고, 이를 사랑하셨는데, 지금은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묻는 사제에게, 교황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저는 정말로 제 자신을 신부로 느낍니다. 신부로, 사제로, 참으로 주교로 느낍니다... 그렇게 느낍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를 좀 더 중요한 사람으로 느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것에 대해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교활합니다. ~ 영리합니다. 너는 지금 권력을 지녔기에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다고 느끼도록 합니다. ...언제나 우리 주위를 (으르렁 대는)사자처럼 맴돕니다. 성 베드로께서 말씀하신대로입니다. 그렇죠? 그러나 저는 주님 덕분에 그것을 여전히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만일 제가 그것을 잃어버린 것을 여러분이 보시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그것을 말해주실 수 없다면, 공개적으로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여보시오, 회개하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비로운 신부에 대해 언급하시며 다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에 빠진 신부는 그의 첫 사랑, 즉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항상 떠올려야 합니다. 언제나 그대로 남아계시며, 우리를 기다리는 분께 대한 충실함을 되찾아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이 사랑에 빠진 신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그는 첫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돌아올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교회는 전자 장치의 교회일 뿐입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엄격주의에 빠진 신부들과 방임주의에 빠진 신부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하셨습니다. “자비로운 신부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덧붙이셨습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좋으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함께 갑시다. 우리가 언제나 눈앞에 지니고 있어야 할 (경구), 우리는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동무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언제나 이렇게 도상(途上)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연구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이런 진리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교의적인 진리, 이를 테면 윤리적 진리,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과 인내가 동반된 진리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여러 추문들이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거룩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거룩함, 숨겨진 거룩함, 가정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하는 많은 엄마들, 여성들과 남성들의 거룩함이 있습니다.”

 

저는 감히 말합니다. 오늘 날과 같이 많은 선성을 지닌 교회는 전에 없었습니다.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강조된 주제는 가정이었습니다. 특히 예민한 문제인 혼인의 무효와 재결합의 테마를 다루었습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성체를 영할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의 문제로 국한시킬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단지 이것으로 제한하는 사람은 참 문제를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가정들에게 교회가 큰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이 순간, 혼인의 무효 문제를 풀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곧 있을 주교들의 시노드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복음과 인격 그리고 가정의 인간학적 관계에 대해 시노드의 규정에 따라 이 문제를 연구토록 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실존적인 주변인들의 문제입니다.”

 

 

http://cosarestadelgiorno.wordpress.com/2013/09/16/cose-la-fatica-per-un-sacerdote-lincontro-di-papa-francesco-con-il-clero-romano-16-settembre-2013/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suKlsWjii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