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교황님과 함께 삼종기도(8월 11일)

작성자 : 홍기선 작성일 : 2013-08-12 조회수 : 2003

어제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님께서 삼종기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주일 복음을 설명하시면서 참된 보물은 우리들의 삶에 의미를 가져다 주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옮겨 보았습니다. 일독해 보시길~~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주일의 복음(루카 12,32-48)은 그리스도와의 결정적 만남에 대한 갈망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갈망은 언제나 우리를 깨어있는 영으로 준비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전 존재와 함께 이 만남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삶의 근원적인 기다림입니다. 이 갈망은 드러나기도 하고 때론 감추어져 있기도 합니다만,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런 갈망이 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분이 우리에게 전해준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내용 안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경우에 복음사가 루카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즉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향하여 가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서 그분은 자신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그분 마음의 내밀한 태도를 그들에게 교육시킵니다. 이 태도들 가운데, 세상의 재물과의 단절, 아버지의 섭리에 대한 믿음, 그리고 내적인 깨어있음,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성실한 기다림 등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버지 집으로의 귀환에 대한 기다림이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그분 자신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그분은, 이미 하늘로 불러올리신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신 것처럼, 끝없는 축제에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다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 안에 크고 깊은 갈망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갈망은 형제들과 함께 그리고 길동무들과 함께, 주님을 만나고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경구 안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너희들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들의 마음이 있다(루카 12,34).” 마음이 추구하는 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갈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갈망을 지니고 있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저 지평선 끝까지 가고자하는 갈망,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 지평선은 우리의 생명이며 기쁨이신 예수님, 바로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이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갈망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고 침묵 가운데 대답해 보십시오. 당신은 갈망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까, 혹 닫힌 마음, 잠들어 있는 마음, 생명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 마비된 마음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갈망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갈망하는 당신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왜 예수님은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들의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묻습니다. 어디에 당신의 보물이 있습니까? 무엇이 당신에게서 실제적으로 제일 중요합니까, 당신의 마음을 마치 자석과도 같이 끌어당기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매혹시킵니까?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른 이들에게 산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과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말할 수 있나요? 각자 자신의 마음속으로 응답해 봅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제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 저는 가정을 지닌 자이기에 일하고 있습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실제는 저의 가정을 부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렇죠. 사실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 그 가족을 하나로 만드는 힘,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누가 당신들의 마음에 사랑을 심어 놓았습니까?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의 작은 직무에도 의미를 주고, 큰 시련과 맞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시랑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참된 보물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삶을 이끌어 나아가는 것, 주님께서 마음속에 심어 놓으신 그 사랑으로, 그 하느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인 감정, 공허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 이름과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 안에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공기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허공을 사랑합니까, 모든 것을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우리들 가운데 존재하는 아버지의 선물, 예수님,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여타의 모든 것에 의미와 아름다움을 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가정과 일과 공부와 우정과 예술과 모든 인간 행위에 힘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정적 경험에도 의미를 줍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이 (부정적인)경험들을 넘어서 나아가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악의 노예로 머물지 않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이상을 통과하도록 이끌며 언제나 희망에로 나아가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줍니다. 희망의 그 지평을, 우리들 순례의 궁극적 지평을 열어줍니다. 지치고 쓰러진 자들도 이렇게 의미를 발견합니다. 우리들의 죄악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의미를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이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언제나 용서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오늘은 우리가 교회 전례력 안에서 아씨시의 글라라 성녀를 기념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며 가난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분입니다. 성녀 글라라는 오늘 성경의 내용에 대해 우리에게 매우 아름다운 증언을 하신 분입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소명에 따라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동정녀 마리아와 성녀에게 도움을 청합시다.”

603016_570086189722069_1724481731_n.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