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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사형제도 합헌 결정에 실망한다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10-03-05 조회수 : 6253

헌법재판소의 사형제도 합헌 결정에 실망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광주고등법원이 위헌 제청한 사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모순적인 제도인 사형제도에 헌법재판소가 면죄부를 준 반생명, 반인권적인 결정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동안 사형제도 폐지를 염원해 왔던 이 땅의 모든 양심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생명과 인권을 외면하고 보수적인 법률적 논리와 정치적 판단으로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사형제도는 가톨릭을 비롯한 모든 종교계가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제도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형수들과 살인 사건 피해자들을 위한 사목을 펼쳐왔습니다. 특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를 두어 한국사회의 사형폐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으며 전 세계의 양심들과 함께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17대 국회와 18대 국회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10만 명이 넘게 서명한 사형제도폐지특별법 입법청원서를 제출하였으며 각 종단의 지도자들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장, 법무부 장관 등을 면담하여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해 왔습니다. 이미 2007년 12월 사형집행 중단 1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되었음을 국제사회에 선포한 사실마저 민망하게 만든 헌법재판소의 오늘 결정은 헌법재판소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결정이 될 것입니다.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을 비롯한 140여 개국이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였거나 사실상 폐지하였고, 2007년 12월 18일 제62차 유엔(UN) 총회에서 전 세계적 사형 집행의 유예(모라토리움)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됨에 따라 해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유럽평의회와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으며, 유엔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자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국가에 걸맞은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장 반인권적이고 반문명적인 형벌인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부끄러운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생명권은 헌법이 보호해야 하는 기본권 중 가장 으뜸이 되는 권리입니다. 1990년 이후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알바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헌법재판소에서 사형제도가 자국의 헌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결정을 내려 사형제도를 폐지한 바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 헌법재판소가 사형선고와 사형집행에 대한 유예를 연장하기로 결정하며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한민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실망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오늘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가 우리 헌법에 위배되지는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것이 곧 사형제도가 정당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형제도는 국가가 법의 이름을 빌려 자행하는 명백한 살인행위이며 폐지되어야 하는 제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형제도의 폐지가 강력범죄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사형제도 폐지는 사회 전반에 걸쳐 생명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더욱 인권 친화적이고 생명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오랜 시간 동안 생명에 대한 사랑과 지칠줄 모르는 의지를 갖고 사형제도의 폐지를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해 온 종교계와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 인권운동진영 등과 힘을 모아 18대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사형제도폐지특별법의 통과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전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앞으로도 사형제도와 같이 인권과 생명을 해치는 법과 제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갖고 인권과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함께할 것입니다.




2010년 2월 25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  기  산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