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촉구하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듭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들이 적극 추진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 확대 정책, 곧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사회 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입니다. 만성적인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전의 빈곤 현상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근로 빈곤층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하여 국가 공동체의 삶을 크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고 정규직 전환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해고 사태를 불러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노사 양측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이 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그 이름에 걸맞게 개정해 줄 것을 정부와 국회에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오늘날 비정규직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여성, 청소년, 고령자, 장애인, 외국인 및 비숙련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품어 안고 공동선을 위하여 어떠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느냐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귀기울이며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첫째,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노동은 자본보다 본질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원칙에 따라 노동자들이 생산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주체적이며 인격적 존재로서 존중되고 그들이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이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하여 왔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77-280항 참조).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성한 노동의 가치와 권리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 모두는 연대성의 정신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받아들이고 배려해야 하겠습니다.
● 정부는 직업훈련 및 직업 안전망을 제도적으로 확충하여 극단적인 실업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 기업의 책임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기업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적정한 임금과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대기업의 경영자들은 관련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몫을 공정하게 보장하여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차별해서는 안 되며,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일자리와 임금을 나누려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 그리스도교 신자 기업인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에서부터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한국 천주교회의 고용 관행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우선 교구와 본당, 기타 교회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추구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넷째,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에도 그 보수는 “노동조건과 공동선을 고려하여 본인과 그 가족의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67항)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과도한 임금 격차를 지양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는 우리 사회가 효율성과 경제 성장의 가치만을 추구하지 않고, 공동선과 연대성 그리고 인간 존엄의 정신을 바탕으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와 나눔을 실천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2008년 2월 11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 기 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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