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갑돌이와 갑순이
누군가 갑돌이와 갑순이가 혼인하지 못한 이유를 “동성동본(同姓同本)” 혼인 금지 조항 때문이라 하여 크게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동성동본이라는 설정이 재미있는데 2008년부터는 민법이 개정되어 이들도 혼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법 809조는 8촌 이내의 혈족사이의 혼인만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이들이 동성동본이라 하더라도 8촌 이내의 혈족이 아니라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혼인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랫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혼인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뿐이래요. 겉으로는 음~ 모르는 척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 안 그런 척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갑순이는 사랑한다고 먼저 고백할 수 없을 만치 수줍음 많은 처녀였고 갑돌이는 혹 마음을 들킬까봐 안 그런 척하는 겁 많은 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백했다가 거절당할까봐 두려워했기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만 살짝 노출시켰을 뿐입니다.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고까짓 것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날밤에 서로를 생각하며 울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애절한 안타까움과 사무친 슬픔이 느껴집니다. 사랑은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과 같이 마냥 아름다운 것이 아닐 때도 있나 봅니다.
이 이야기가 흥겨운 민요가락에 실려 들릴 때면 너무도 익숙한 과거가 떠올라 가슴이 아려옴을 느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그런 문화와 시대를 막 지나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궂은 날이면 도지는 신경통처럼 이를 지병으로 느끼며 살아왔기에 모두들 관(棺)까지 가져갈 병이라고 체념하며 삽니다.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 시집간 수많은 갑순이와 홧김에 장가간 수많은 갑돌이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시대의 아픔으로 삭이며 살고 있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죄 없는 배우자들이 맞았을 불행한 첫날밤은 너무도 억울하기에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날밤에 다른 사람 생각하며 한 없이 울었다는 갑순이와 달보고 훌쩍였다는 불쌍한 갑돌이의 러브 스토리는 하느님께서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법은 제1057조와 제1058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혼인은 법률상 자격 있는 사람들 사이에 합법적으로 표명된 당사자들의 합의로 이루어지며 이 합의는 어떠한 인간 권력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혼인 합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철회할 수 없는 서약으로 서로 자기 자신을 주고받는 의지 행위이다. 법으로 금지되지 아니한 모든 이는 혼인을 맺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