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비 공소는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여러 박해를 거치며 강원도 산간벽지로 숨어든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 중 한 곳이다.
물구비가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풍수원 본당 정규하 신부의 연례보고인 1891년-1892년 통계보고로 당시 46명의 신자가 있다고 되어있다. 물구비 공소는 1920년 9월 곰실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을 때도 곰실 본당이 아닌 풍수원 본당에서 관할했고 당시 신자 수는 109명이었다. 1923년 6월 21일 송정이 본당으로 승격된 이후에도 물구비 공소는 풍수원 본당 관할 공소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114명이었다. 뮈텔주교일기에 의하면 신자들은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신앙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1891년 교우촌이 형성되어 오랫동안 공소로 지내던 물구비는 1948년 9월 5일 풍수원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주재용 신부가 임명되었다. 물구비 본당은 풍수원에서 관할하던 홍천 남면 일대의 중방터, 유치, 학익골 등의 공소를 관할하며 성장하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성당이 완전히 전소되었다.
전쟁 이후 신자들이 힘을 모다 25평의 건물을 다시 짓고 신앙생활을 이어나갔으나, 교세 확장을 위해 1962년 11월 현재 양덕원 성당 자리로 본당을 이전하면서 다시 공소가 되었다.
* 이곳은 춘천교구의 역사적인 장소 중 하나이기에 소개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위치에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