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본당은 1923년 6월 21일 곰실 본당 관할 송정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된 것으로, 주보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다.
최양업 신부의 가계이력 중 하나인 '최 바시리오 이력서'에 1791년 박해를 피해 홍천 등지로 내려갔고 지금도 후손들이 홍천 학익동과 풍수원에 여러 집 있다는 기록이 있어, 최양업 신부의 방계(傍系)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또 병인박해를 피해 홍천으로 피신했다는 기록이도 있어 박해를 피해 이주한 이들이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홍천지역에 신앙이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홍천지역의 여러 교우촌 중 하나인 송정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터전이 되고 신앙을 널리 알리는 전교의 장이 되었다.
본당이 되었으나 별도의 건물이 없이 3년을 지내다가10여칸 한옥 성당을 짓고 본당으로서의 기틀을 잡았으나, 교세 확장과 장래성을 보고 1936년 현재의 성당이 있는 홍천읍으로 본당을 이전했고 송정 본당에서 홍천본당으로 본당명도 변경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일제는 전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아일랜드 신부들을 홍천 성당에 감금했고, 이때 길 헨리(Henry Gillen) 신부가 병사하기도 하였다.
1947년 부임한 조선희 신부는 성당건축을 시작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단되었고, 신축중이던 성당도 파괴되고 조선희 신부는 포로로 죽음의 행진에 끌려갔다. 1950년 9월 서울이 수복되자 본당으로 돌아온 최동오 신부는 목조 성당을 복구하여 1953년 9월 낙성식을 하였으나 이에 만족하지않고, 전쟁 발발 전부터 조선희 신부와 시작한 석조성당 건축을 다시 추진하였다. 현재의 성당은 최동오 신부가 1954년 짓기 시작하여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조선희 신부에 의해 1955년 4월 준공되었으며, 1950년대 석조 건축물의 전형적인 형태를 표현하고 이를 잘 보존한 것이 인정되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홍천 본당은 1923년 6월 21일 본당으로 승격된 이래 100년의 기간 동안 4개 본당(1954년 인제, 1968년 서석, 1976년 성산, 1999년 연봉)을 분가, 설립하며 중부지역의 모본당(母本堂)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트 https://cafe.daum.net/hccatho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