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지역은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한 이들에 의해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882년 교세통계표에 강릉지역에 삼정평이라는 교우촌에 42명의 신자가 있다는 기록을 시작으로, 임당동 본당 설립 이전 구정면 금광리, 구정면 여찬리의 삼정평, 구정면 제비리의 제비골, 옥계면 남양리의 오일골 등의 교우촌에서 꾸준히 신자수가 확인된다.
드브레(Davred) 주교는 최문식 신부를 상도문리 본당에 파견하면서부터 영동지역에 또 하나의 본당을 설립할 뜻을 가지고 있었고, 1921년 6월 수품을 받은 이철연 신부를 최문식 신부와 함께 머물면서 본당으로 삼을 곳을 물색하도록 하였다. 이철연 신부는 최문식 신부와 함께 가을 공소를 둘러보고 1921년 12월 금광리로 이주하면서 임당동 본당은 시작되었다. 이철연 신부가 교세확장을 위해 주문진으로 이주하기도 하였으나, 1934년 김인상 신부가 강릉 읍내로 다시 본당을 이전하고 본당 이름을 강릉본당으로 하였다. 1974년 옥천동 본당을 분가시키면서 임당동 본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전쟁 중인 1951년 현재의 성당 소재지에 부지를 매입하고 1955년에 본당 건물을 신축, 준공했고, 같은 해 11월 23일 퀸란 토마스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되어 ‘성 골롬바노’ 성전 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또 1950년대 강원지역에서 동일한 기법의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성당 가운데 대표적인 건축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중앙부 종탑과 건축 당시의 외형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임당동 본당은 설립 이후부터 지역사회와 상생(相生)하고 있는데, 1946년에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청소년을 위한 야간중등학교 과정인 성심공민학교를 설립하여 10년간 운영하였고, 1948년에는 성심보육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1967년에는 소화유치원을 개원하여 현재도 운영하고 있는데, 교우 자녀들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앙을 모르는 비신자 자녀들에게도 신앙의 싹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며 신뢰받는 가톨릭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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