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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신문슈테혀 주교의 바티칸 라디오 강론 묵상집 장익 주교가 옮겨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18-04-05 조회수 : 889




슈테혀 주교의 바티칸 라디오 강론 묵상집 장익 주교가 옮겨

 
‘운명의 괄호’를 푸는 ‘부활의 수학 방정식’



2018. 04. 01발행 [1458호]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인홀트 슈테혀 주교 지음 / 장익 주교 옮김

분도출판사 / 1만 2000원




주님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한 주님을 만난 제자들에게도, 고대 문화의 한복판 식자층과 장사꾼들이 뒤섞인 아테네에서 설교한 터키 사람 바오로 사도에게도, 혼란스러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오스트리아의 덕망 높은 주교였던 라인홀트 슈테혀(1921~2013)는 자신이 고안해낸 ‘부활의 수학 방정식’으로 부활에 대한 이해를 극적으로 돕는다. 모든 인간에게는 삶을 테두리 짓는 커다란 ‘운명의 괄호’가 주어진다. 그 안에는 수많은 성취와 좌절,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고통과 사랑, 삶과 죽음이 담긴다. 이는 모두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무수한 미지수로 구성된다. 우리는 모두 운명의 괄호를 푸는 삶을 산다. 행복과 기쁨이 있는 삶 속에도 우리는 힘들 때나 슬플 때, 좌절을 경험할 때 언제든 거기에 마이너스(-)를 긋고 싶어지기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부정적인 결론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슈테혀 주교의 ‘부활의 수학 방정식’에 따르면, 하느님은 세계사의 가장 결정적인 아침에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운명의 괄호 맨 앞에 플러스(+)를 붙여주셨다. 그 결과(=)는 ‘구원’. 이로써 인간의 운명 괄호는 비극과 파멸이 아닌, 구원으로 말미암아 위로 들어 올려진다. 부활은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산수’. 그러므로 거듭되는 불행과 좌절에도 부활의 신비를 믿고 따른다면 모든 것은 플러스가 되는 것이다.

본문 내용은 슈테혀 주교가 2002~2005년 바티칸 라디오에서 강론한 묵상 내용을 옮긴 것이다. 장익(전 춘천교구장) 주교의 유려한 번역이 글의 매력을 더해주는 책이다.

슈테혀 주교는 ‘부활 공식’에 앞서 예수의 수난사를 들려준다. 인간적으로 보자면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에 있었을지도 모를 예수. 겟세마니 동산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번민하며 최후의 기도를 바쳤을지, 본시오 빌라도 앞에 끌려간 자리에서 초조한 율법 사제들과 증인들의 엇갈린 진술이 어떤 장면을 낳았는지 등 2000년 전 예수 수난기가 슈테혀 주교의 풍부한 표현력의 힘을 얻어 마치 영화처럼 펼쳐진다.

슈테혀 주교는 주님은 수난과 부활을 통해 ‘그럼에도 사랑’이란 감격스러운 실증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는 주님께서 “가능하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바친 기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며, 두려움을 무릅쓰고 “네”하는 사랑, 가장 결연하고 용감한 마음이다.

여전히 이 세상에서 통하는 것은 돈과 권력, 시기와 증오, 협잡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외아들을 극한의 고통인 죽음으로 내어놓음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그 고통은 우리에게는 경이로운 구원의 노랫가락이 됐으며, 온 하늘이 바이올린으로 가득해지는 궁극의 기쁨이 됐다.

슈테혀 주교는 오늘날 우리가 ‘부활의 불빛’을 전하는 사도로서 어두운 구석, 그늘져 가는 마음을 비추는 ‘등대’가 돼 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분명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의 괄호 앞에 하느님이 새겨주는 플러스(+)가 생길 것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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