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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깊은 산속에 기록과 유산 보관한 이유 있을 터인데,

작성자 : 문화홍보국3 작성일 : 2011-12-01 조회수 : 3368
김운회 천주교 춘천교구장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빛난다…


이탈리아 로마 거리를 다니다 보면 `아니 왜 이것이 여기에 있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오벨리스크'이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는데, 태양 숭배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심장이라고 하는 로마에 태양 숭배의 상징인 오벨리스크가 버젓이 이 1,000년 넘게 세워져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그 이외에도 이집트의 미라가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면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의 고유 유산들이 다시 그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면 과연 그 자리는 어느 곳이 되어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본래 있던 그 자리, 제자리로 가야 할 것이다. 돌아가야 할 제자리에 큰 문제가 없다면 말이다.


불교계의 많은 노력으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가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이자 국보로서 우리 강원도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기록물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6년 7월 도쿄대학으로부터 반환된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문화재청은 3년간의 디지털 작업, 연구조사, 영인본 제작 등을 이유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임시 보관하고, 3년 후 소장할 장소를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밝힌바 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왜 본래 있던 자리를 마다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도회지 한 복판에 보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그 기록의 중요함을 알고 일부러 깊은 산속 여러 곳에 기록과 유산을 보관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 이유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 기록의 유실을 막고 보존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고려 말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실록 등 국가의 중요한 자료를 보관하려고 전국의 4곳에 사고(史庫)를 만들어 철저히 관리하였다. 이런 우리 선조들의 기록 보관의식을 보면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문화 등 사회의 각 분야를 세밀히 기록하여 내용이 가장 풍부한 역사서인 실록을 만들어 그렇게 보관한 것은 당연하면서도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기록에 대한 연구와 전시를 목적으로 디지털 작업과 영인본 제작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진본의 보관은 원래 있던 제 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을 것이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법이다.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오는 12월 초순 이전에 돌아올 조선왕실의궤 모두가 제자리인 오대산 사고에 봉안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