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강원기행](124)춘천시 남산면 섬배마을 | |
두메산골에도 넓은 평지, 큰 장이 섰고 20개리 주민이 몰렸다 | |
◇사진 위쪽부터 춘천시 남산면 광판리 장터길 전경, 천주교 춘천교구 광판 공소를 알리는 표지판, 목화체험을 즐기는 참가자들, 목화체험 장면, 소양강 광판지구 오이 출하 모습. 춘천=오윤석기자 | |
벼 한섬 두섬…춘천 섬배마을.
춘천시 남산면 광판리 1~3리, 행촌리 이렇게 4개 마을을 묶어 그렇게 부른다. 지자체의
정보화마을에 선정, 마을 단위 공동 사업을 시작하면서 섬배마을은 이 마을의 또다른 이름이 됐다. 섬배란 벼 한섬, 두섬을 일컫는 의미로 20말의 의미가 강하다. 행촌리는 예부터 20가구가 살았고, 한 가구가 이사가면 다시 한 가구가 들어오고 20의 의미가 강했던 지역 공동체였다. 그래서 정보화마을을 시작하며 아름다운 지역 공동체 의미를 담아 `섬배'란 의미를 붙였다. 섬배마을의 대부분은 광판리(光坂里)이다. 거이 평지인데, 강원도 두메산골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지가 드넓다. 그래서 광판리는 면 소재지가 아니면서도 큰 장거리가 섰다. 춘천뿐아니라 홍천 인근의 주민 등 약 20개리 주민들이 장거리에서 만나 쌀과 잡곡 밭작물 등을 서로 교환하고, 장돌뱅이들도 생활필수품을 들고 모이면서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지역 농협에서도 별도의 수매 창고를 짓고, 정미소도 운영하는 등 땅 덩어리 넓은 광판리의 입지를 그대로 반영했다. 장터가 번성했던 것은 광판리의 드넓은 경작지는 물론 마을을 크게 둘러싼 산세 때문에 춘천시나 홍천군의 도심으로 가기가 수월치 않았던 이유가 컸다. 그래서 지금도 광판1리에는 그렇게 약 100m가량 되는 좁다라면서도 길게 늘어선 장터 양옆으로 낡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면 소재지에 장이 서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 광판리는 그렇지 않았다. 농민과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여러 식당과 이발소 잡화점 철물점 공업사까지 웬만한 면 소재지 못지않은 상권이 형성돼 있었다. 광판초교는 물론 광판중학교까지 들어섰다면 지역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하지만 세월의 변화를 비켜갈수는 없었다. 10여년 전쯤 됐을까. 도로가 잘 뚫리고 교통이 편해지면서 홍천의 북방면이나, 서면 등 인근 지역 사람들도 읍내나 면단위 장터를 이용하고, 남산면 사람들도 시내에 다니면서 장터 기능을 잃었다. 마을이 얼마나 번성했던지 작은 마을임에도 옛 장터 옆에는 천주교 춘천교구 강촌성당 광판교구가 들어설 정도였다. 요즘 광판리는 3년 전 춘천~서울 고속도로 남춘천 IC가 생기고, 그에 앞서 지자체의 기업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아직도 홍역을 앓고 있다. 기업도시는 없던 일이 됐고 다시 산업단지 계획이 나오면서 주민간 찬반 갈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곳에는 신앤박, 무릉도원 등 주변에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또 다른 변화상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을은 너른 토지를 토대로 논 농사며 오이 토마토 가지 애호박 등 밭작물을 키우는 성실한 농사꾼들의 삶의 터전이다. 마을의 또 다른 자랑은 4년 전부터 시작된 목화체험이다. 섬배 정보화마을 회관 옆 8,000㎡ 안팎의 밭에 목화를 심어 도시민들의 체험 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주민 공동 사업이다. 목화는 수입에 밀리면서 전국적으로 더이상 농사짓지 않는다. 대규모로 심은 목화 밭이 전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하다. 목화 농사도 수요와 공급이란 경제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수입 솜이 훨씬 저렴하므로 목화솜이 필요한 기업들은 국내 수급이 필요없고, 당연히 살 곳이 없는데 힘들게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었다. 그걸 비집고 들어간 것이 체험이다. 미국에서 목화솜을 수입해 온다고, 아이들에게 비싼 비행기 값을 물며 그 현장을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섬배마을은 틈새시장으로 목화 체험을 시도했다. 목화를 심고 매년 가을 체험행사를 여는데 한 해 2,000~3,000명이 찾는다. 평일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단체 방문객이, 주말에는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다. 입소문이 퍼져 매년 가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목화솜도 따고, 개화하기전 목화다래를 맛보기도 하는 이색적인 체험을 하는 이가 많다. 아이들은 이불이나 베개 옷 인형 등 우리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목화 솜이, 이렇게 크는 것이란 사실을 배우며 호기심에 가득찬 눈을 반짝인다. 젊은 또래 아빠와 엄마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밭 체험이 끝나면 직접 자신이 딴 솜을 인형 안에 넣어 자신만의 인형을 만드는 체험까지 한다. 1인당 2만원인데 점심식사까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손수 만들어준다. 또 마당 한쪽에서 투호 던지기 등 전통놀이를 즐기고, 트랙터에 연결된 달구지에 올라 마을 한 바퀴를 도는 일도 아이들에게는 색다른 재미이다. 추수기를 앞둔 황금 들녘 위로 그렇게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포개어진다. 올가을 춘천 섬배마을은 너른 들판의 곡식과 인심 모두 그렇게 잘도 익어가고 있었다. 류재일 cool@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