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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금년 동해안 일대 속초지역에 기록적인 큰 눈이 내렸다. 성능 좋은 제설장비 덕분인지 대로는 자동차 통행이 원활했지만 소로는 불편이 따르기도 했다. 아직도 산과 주위에 쌓인 눈을 보면 봄은 오지 않은 것 같다. 흰 눈을 뚫고 나오려는 풀과 나무의 새롭고 활기찬 생명력의 의지는 안쓰럽지만 자랑스럽다. 그래서인지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따스한 햇살은 아주 고맙게 느껴진다. 자연의 순환 이치는 오늘도 변함이 없다. 인간의 삶에는 봄과 함께 꼭 찾아오는 전례시기가 있다. 사순절이다. 지난 9일 수요일부터 주일을 빼고 다음 달 23일까지이다. 그 다음날은 예수 부활대축일이다. 사순 시기는 대축일을 맞이하기 위해 속죄와 정화로 준비하는 시기다. 정화의 기간을 40일로 삼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구약에서 모세의 40년 광야생활과 십계명을 받기 위한 그의 40일 단식, 예수의 공생활 시초의 40일 단식을 들 수 있다. 5세기의 성요한 카시안 사제는 자기의 저서에서 사순절을 `한 해의 십일조'로 묘사했다. 그 날 수가 대략 한 해의 10분의 1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순절에 나도 한 해의 십일조를 봉헌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 자신을 정화하려고 하니 많은 일이 떠올랐다. 먼저 순서들을 정해서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서울에 있는 연로한 숙모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아주 반가워하시기에 작은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다음날에는 미국에 있는 P자매에게 국제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기뻐하며 한국에 올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LA에서 신세를 졌기 때문에 빚을 갚겠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한국에 올 때 좋은 책을 선물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사순절은 짐스럽고 우울한 시기가 아니라 참으로 나 자신을 정화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귀중한 시기라고 말이다. 이렇게 40일 동안을 정화하고 부활절을 맞는다면 나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고, 은총이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전세권 천주교 춘천교구 원로사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