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 교구민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 가꿔
'서울 토박이' 김운회 주교 입에서 어느덧 춘천교구 대신 '우리 교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춘천교구장으로 착좌한 지 5개월이 지난 김 주교는 "교구장으로 부임한 후 우리 교구 현황을 파악하느라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본당이 많지만 주임 신부를 비롯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소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면서 "재정 형편이 열악한 본당을 적극 지원해 신자들이 좀더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박하고 행복한 우리 교구민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까지 좋은 춘천교구에 오신 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교구 현황을 둘러보신 소감은.
"착좌식 때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님께서 저에게 '땡 잡았다'고 하셨는데 맞는 말씀입니다(웃음). 우리 교구는 체계와 조직이 잘 갖춰져 있고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제들과 마음 착한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교구입니다.
그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많은 분을 만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수많은 교구민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이 땅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욕심 없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춘천교구에는 1년 예산이 4000만 원이 안 되는 본당이 5곳, 8000만 원이 안 되는 본당이 15~16곳에 이릅니다. 주임 신부님들에게 힘든 점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더니 '부족하지만 행복하게 사목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기쁘게 사목하시는 신부님들께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경제적으로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좋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도농직거래 시스템 만들 계획
▲주교님께서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서울대교구본부 이사장을 역임하시면서 도시ㆍ농촌 간 교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농촌 지역이 많은 춘천교구와 대도시 교구들 간 교류가 기대됩니다.
"우리 교구는 감자, 옥수수, 곰취 등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 많이 재배됩니다. 대도시 교구들과 춘천교구 간에 농작물 거래를 활성화하면 춘천교구민은 안정적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대도시 신자들은 질좋고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싼 값에 구입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거래가 꾸준히 이뤄진다면 형편이 어려운 본당과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대도시 교구들과 춘천교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안정적인 도농 직거래 시스템을 만들 생각입니다. 곧 가톨릭농민회 담당신부를 임명해서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활성화시킬 것입니다. 서로의 신뢰 속에 농산물 거래가 이뤄지면 도시ㆍ농촌 본당 간 교류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역사목 활성화 힘쓸 터
▲춘천교구는 경기북부 포천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교구민들의 일치를 이루는 데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땅은 넓은데 교통이 불편해 사목에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제가 더 많이 움직이고 틈나는 대로 여러 본당을 방문해 교우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만의 노력으로는 여전히 부족하기에 지역사목 활성화를 위해 힘쓸 것입니다. 사제들에게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본당, 신자들 간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모임을 자주 가져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함께하는 모임에 제가 참여한다면 지역 한계를 넘어 일치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교와 사제단이 사랑으로 하나 되고, 주교에게서 파견된 사제들이 교우들과 하나가 된다면 교구는 자연스레 하나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더 많이 연구하고 기도하면서 교구를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습니다."
통일 시대 사목 대비
▲주교님께서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을 역임하시면서 남북 일치와 화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북녘과 맞닿아 있는 춘천교구에서 주교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춘천교구와 함흥교구 교구장(함흥교구는 교구장 서리)을 겸하게 된 것은 주님이 주신 또 다른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동포들은 역사가 우리 시대에 요청하는 이웃입니다. 개인적으로 아픈 기억이나 상처를 안고 있기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수 있지만 우리는 북한 정권이나 기득권자들이 아닌 가난에 고통받고 있는 동포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자유와 생존을 위해 우리를 찾아온 새터민들에 대한 지원과 도움은 더욱 절실합니다. 춘천교구가 대북 지원에 힘을 쏟는 것은 분단교구로서 장차 통일 시대 사목을 대비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친교의 공동체 만들어야
▲춘천교구 냉담교우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냉담교우 문제는 비단 춘천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입니다만, 냉담하는 그들의 발길을 다시 교회로 돌리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교구장으로 부임한 후 가장 먼저 냉담교우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난 사제연수 때 모든 신부님께 냉담교우 회두 문제를 강조했고, 오는 대림절에 발표할 첫 번째 사목교서에도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룰 것입니다.
냉담 원인은 대부분 매우 인간적인 것들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나 믿음의 부정이 아닌 인간적 상처나 무관심, 혹은 소홀해진 신앙생활이 긴 냉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앙 안에서 소외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정한 친교의 공동체를 만들면서 냉담교우들을 적극적으로 권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의 적극적 관심과 방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의 쇄신 바탕으로 복음화 추진
▲춘천교구는 지난해 설립 70주년을 지냈습니다. 전임 교구장님들께서 교구의 든든한 반석을 만들고 기틀을 잡았다면 주교님께서는 교구가 100년을 향해 도약할 시기에 교구장직을 맡으셨습니다. 8만 여 춘천교구민의 목자로서 사목적 포부를 말씀해주십시오.
"전임 교구장님들이 훌륭하게 닦아놓은 터전 위에 새로운 성장을 일궈내야 할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참된 복음화의 구현, 복음화된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쇄신이 요구됩니다. 현대 사회는 절대적 가치와 권위가 붕괴되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진리이며 온전히 승복해야 할 진정한 권위임을 알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교우들이 평신도로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부터 세상을 복음화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화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사제들에게 우선적으로 영적 쇄신을 촉구하며 이끌어 나갈 생각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 여러 사람 의견을 충실히 듣겠습니다. 사목을 잘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가 하나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되고 일치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임영선 기자
▨춘천교구 약사와 현황
교황청이 1938년 강원도 포교권을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 위임하고 이듬해 이 지역을 춘천지목구로 설정함으로써 역사가 시작됐다.
북녘과 맞닿아 있는 춘천교구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다. 해방 이후 38선이 그어지면서 강원도 동북지역과 함경도 선교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천ㆍ포내ㆍ평강본당 신자 3000여 명이 북녘에 남겨졌다.
1966년 골롬반회 박 토마 주교가 제5대 교구장으로 착좌, 30년 가까이 교구를 이끌었다. 1994년 첫 한국인 교구장 주교로 부임한 장익 주교는 교구민들의 신앙성숙을 위해 노력하고, 특히 북녘동포를 돕기 위해 '한솥밥 한식구 운동'을 전개했다. 올해 3월 김운회 주교가 제7대 교구장으로 착좌해 재임 중이다.
교구는 강원도 4개 시 및 8개 군과 경기도 포천시ㆍ가평군, 그리고 휴전선 이북 북강원도 지역 일원을 관할한다. 관할구역 넓이가 1만1293㎢로 전국 교구 중 가장 넓다. 신자 수는 2009년 말 현재 7만8089명으로, 약 7% 복음화율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8월 새 사제 3명이 탄생하면서 사제 수는 100명이 됐고 본당은 58개(준본당 2개 포함), 공소는 45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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