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주영덕(춘천구 홍천본당 보좌) 신부
"하느님께서 먼저 꺾어가실 만한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사제생활 3년 만에 선종한 주영덕(비오) 신부의 장례미사가 봉헌된 2일 춘천 죽림동성당.
신호철(청평본당 주임) 신부는 강론에서 "사제로 3년밖에 살지 않았는데도 주님은 그의 성숙과 삶이 추수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신부는 10년 전 눈망울 선한 청년이었던 고인을 처음 만나 사제의 길을 열어준 '아버지 신부'. 목이 메어 강론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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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주영덕 신부 |
"죽음이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면, 사제의 죽음은 영원한 사제생활의 시작입니다. 고인은 자신의 첫 미사 강론을 제게 맡기더니, 영원한 사제로서의 첫 미사(장례미사)에도 저를 강론대에 초대해줬습니다. 영원한 사제가 되어 임지로 떠나시는 주 신부님을 박수로 축하해…."
사제들과 신자들은 고별식을 마치고 하늘나라 새 임지로 떠나는 고인에게 큰 박수를 쳐주었다. 울음 소리와 박수 소리가 뒤섞였다.
홍천본당에서 사목하던 주 신부는 고열에 시달리다 입원 보름 만인 10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교구민들은 젊은 사제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했다. 특히 사제직에 성실히 임한 데다 가난하게 살려고 애쓴 사제였기에 슬픔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서품동기 박순호 신부는 "고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을 실천하겠다는 포부로 프라도사제회에 입회하고, 그 상징 문양을 제의에 새겨넣었다"며 "특히 사제생활 1년이 채 안됐을 때 '우리 삶을 반성하자'며 동기 6명의 하루피정을 나서서 주관한 것이 인상 깊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부제 시절, 출신 본당(진부본당)에서 사목하는 선배 신부와 한동안 폐품을 모으러 다니기도 했다. 선배 신부가 폐품을 모아 판 돈으로 가난한 노인들 집에 보일러 등유를 넣어주는 것을 보고 따라나선 것이다. 그는 폐품을 수거하러 가는 트럭 안에서 "저도 신부되면 형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선배 신부에게 말한 적이 있다.
홍천본당 전교수녀는 "맑은 영혼과 온화한 성품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한 사제"라고 말했다.
신호철 신부는 이날 장례미사에서 고인이 부제품을 받기 직전에 써서 보내온 편지를 공개했다.
"기도하는 사제는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사제라고 생각합니다. 높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고 본받고자 하는 사제는 넘어질 때도 있지만 다시 일어나 그분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모습 중 하나는 가난한 삶입니다. 가난을 실천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분의 참다운 제자가 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응답해 나가겠습니다…."
고인은 2004년 사제품을 받은 뒤 스무숲ㆍ죽림동ㆍ초당ㆍ홍천본당에서 보좌신부로 봉직했다. 유해는 죽림동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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