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없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우주도 어둠도 없습니다. 광대하게 텅 빈 공간, 순간 빛, 열, 에너지가 거대하게 폭발합니다. 그리고 빛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갑니다. 이렇게 137억 년 전 우주가 생겨났습니다. 거대한 불덩이는 계속 팽창하였고, 어느 순간 냉각되어 최초의 원자가 생겨났습니다. 이때 우주의 팽창 속도가 아주 조금만 느렸어도 온 우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을 것입니다. 아주 조금만 더 빨랐다면 먼지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팽창 속도가 백만분의 일만 바뀌어도 온 우주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우주 안에 심오한 지혜가 일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우연은 질서 있게 존재를 만들어내고 지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따라 최초의 거대한 불덩어리였던 지구는 아주 기나긴 여행을 통해 지금의 복합적이고 발달 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과학적 우주론 전문가인 브라이엄 스윔은 한때 녹아내린 돌덩어리에 불과했던 지구가 지금은 오페라를 합창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창조력과 의식이 이토록 신비한 방식으로 지구의 심연을 만들고 우주의 기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주는 지구 생명의 기원이 되고, 우주의 지혜는 지구 생명체들 속에 깃들어 장엄하게 존재합니다.
토마스 베리와 브라이엄 스웜이 전하는 ‘우주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심오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왔습니다. 지구가 생기고, 갑자기 인간이 거기에 추가된 것이 아닙니다. 지구가 인간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를 만들고, 지구를 이룬 창조의 질서에 따라 나온 것이지요.
“한 존재를 말하려면 모든 존재의 이야기를 말해야 한다”고 토마스 베리는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우주의 질서와 지혜를 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우주에서 허무하고, 고립된 존재로 남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현자나 예언자 같은 사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속에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모든 존재들이 한 점에서 시작된 한 형제자매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주 이야기를 생각하며 세상을 바라본다면, 인간은 우리가 상상해 온 것보다 더 거대한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우주적 존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그저 한 나라의 국민만이 아닙니다. 단순히 공산주의자나 민주주의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범주의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우주입니다. 모든 생명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던 기술 과학이 오히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우주에 속한 존재라는 사실과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망각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발과 발전’과 ‘생산과 소비’의 시대를 살면서 인간은 세상을 대상화하며, 그저 소유하고 다를 수 있는 도구로 여겨 왔습니다. 결국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지배한 결과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의 지혜를 잃어버린 인류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런 시대에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계십니다. 기술 지배 패러다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고, 전 세계가 서로 만나는 접촉지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66항)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근원적인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많은 것들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인류는 인류가 공동된 기원을 지니고 있고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미래를 함께하는 인식’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기본적 인식이 있어야 새로운 신념, 자세, 생활양식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202항)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속에서 에너지로도 유전자로도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 존재의 선을 위한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것이 결국 자신과 모두를 위한 길이며, 우주적 존재를 살아가는 길임을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선류 타대오 신부·천주교 춘천교구 가정생명환경부장 겸 문화홍보국장 △2006 사제서품 △미국 홀리네임즈유니버시티 문화와 영성 전공 △미국 트라이밸리성당 주임 △교황청립 로마 레지나아포스톨로룸 생명윤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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