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교구소식
교구소식

교구소식

종전 70년 일본 주교회의 담화

작성자 : 문화홍보국2 작성일 : 2015-04-09 조회수 : 2148


종전 70년 일본 주교회의 담화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지금이야말로 무력에 의지하지 않는 평화를

 


* 일본 주교회의는 2015년 2월 23일부터 26일까지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종전 70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년을 맞이하여 평화를 위해 함께할 것을 결의하는 담화(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지금이야말로 무력에 의지하지 않는 평화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담화는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게시하였으며,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1174) 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제자매, 그리고 평화를 바라는 모든 분들에게

 

일본 주교회의는 1995년에 평화를 위한 결의, 전후 50년을 맞이하여”, 그리고 2005년에는 비폭력에 바탕을 둔 평화의 길: 지금이야말로 예언자의 역할을이라는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전후 70년을 맞는 올해, 평화에 대한 결의를 다시 한 번 밝히고자 합니다.

 

1. 교회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관한 문제에 침묵할 수 없다.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올해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20세 초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 등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비극을 반성하며, 교회는 종교적인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인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면서 발표된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의 머리말에서는 이러한 자각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분명히 보여 줍니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는 프란치스코 현 교황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문제, 특히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마주 보고자 합니다.

 

2. 전쟁 포기를 위한 결의

 

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 행위로 아시아인들은 크나큰 고통을 받고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인에게도 제2차 세계대전은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1945310일 도쿄 대공습을 시작으로 일본의 많은 도시에서는 대규모의 공중 폭격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지상전에서는 일본과 외국 병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86일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와 89일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평화에 대한 바람이 태어났고, 1946년에 주권재민, 전쟁포기, 기본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한 일본헌법이 공포되었다. 일본은 이 평화헌법을 바탕으로 전후 70년 아시아의 국가들과 신뢰와 우호 관계를 구축하고 발전시키기를 바라며 걸어 왔습니다.

 

한편, 세계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동서냉전, 베를린 장벽 붕괴 등의 시대를 배경으로 군비 확장 경쟁과 무력을 사용한 분쟁 해결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은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서 원자력을 자랑하는 현대에서는 전쟁이, 침해당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불합리하다.”고 하셨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은 군비경쟁에 반대하고,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를 촉구하였습니다. 1981년 히로시마에서 하신 평화 호소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전쟁은 인간의 행위입니다. 전쟁은 인간 생명을 파괴합니다. 전쟁은 죽음입니다.”라고 언급하시며, 전정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일본 주교단이 현 일본헌법의 전쟁 반대 이념을 지지하고 존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전쟁 포기는 그리스도 복음을 따르는 것이며, 종교인으로서 생명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간절한 소원이며, 인류 전체가 포기할 수 없는 이상(理想)입니다.

 

3. 일본 교회의 평화에 대한 사명

 

일본 주교회의는 특별히 평화를 위해 일할 사명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서 계속해서 평화를 호소합니다. 이러한 사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핵무기에 대한 참혹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전쟁 전과 전쟁 중에 일본 교회가 취한 태도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1986926일 도쿄에게 개최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정기총회 미사에서 당시 도쿄대교구장 시라야나기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우리 일본 주교들은, 일본인으로서 그리고 일본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초래한 비극에 대해 하느님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형제자매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이 전쟁의 관계 당사자로서, 우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등에 지금도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긴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합니다.”

 

이는 주교 개인이 아니라 일본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주교단 전체의 의견을 대표해서 한 말입니다. 또한 일본 주교단은 전후 50년과 60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평화 메시지에서 전쟁 전과 전쟁 중 교회의 전쟁 책임을 반성하고, 그 입장에서 평화에 대한 결의를 표명하였습니다.

 

4. 역사 인식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승인 등의 문제

 

전후 70년을 거쳐 과거의 전쟁에 대한 기억이 멀어지면서 일본에서는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 지배와 전쟁 중 인도주의에 반하는 죄의 역사를 고쳐 쓰고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현저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특정비밀보호법이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통해 사실상 헌법 9조를 개정하여 해외에서 무력행사를 하려는 지금의 정치적 흐름과도 연관됩니다.

 

한편, 일본뿐 아니라 일본 주변 국가 정부들에서도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 간 긴장 속에서 자위권을 이유로 각국이 군비를 증가시키기보다는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와 협상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하여 필요합니다.

 

또한 일본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는 오키나와가 아직까지도 본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군사 기지를 떠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주민들의 뜻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군사 기지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군비 우선, 인간 무시의 태도는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과는 결코 함께할 수 없습니다.

 

5. 오늘날 세계 정세의 심각한 위기에서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는 군사적 갈등과 테러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가 간, 민족간 대립,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분쟁이 격화되어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세계 각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과 어린이, 소수민족과 종교적 소수 집단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러한 참상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3차 세계대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시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결국 힘이 좌우하는 세계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인간성을 존중하는 이성은 어디로 갔습니까? 폭력을 제압하고자 새로운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반복한다면 인류 전체는 파멸로 향할 뿐입니다.

 

세계는 세계화된 기업과 금융 시스템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배제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경제 활동은 기후변동과 생물다양성 상실의 원인이 되기까지 합니다. 평화 실현을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는 일, 곧 세계의 빈곤과 환경 문제, 격차와 배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세상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와 상호이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끝마치며

 

다시 한 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히로시마에서 발표하신 평화 호소의 말씀을 상기합니다.

평화는 항상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제쳐 두고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 폭력과 파괴로 가득 찬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평화의 길을 걸읍시다. 이 길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것이며, 인간의 운명을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평화의 길만이 평등, 정의, 정의, 이웃 사랑을 머나먼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힘을 얻습니다. 전후 70, 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즈음하여 평화를 구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합시다. 우리 일본 가톨릭 교회는 작은 존재이지만,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일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결의합니다. 


 

2015년 2월 25일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