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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교구장 사목교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8-11-26 조회수 : 7044






 

                    교우들에게 드리는 목자의 글
         너희는 가서 열매를 맺어라 

  평화와 새 생명을 가져다주시는 구세주 오시기를 갈망하는 대림시기, 벅찬 기다림의 아름다운 때. 어둡고 기나긴 밤길이 힘겨웠던 만큼 저 놀라운 성탄의 기쁨을 앞둔 우리 마음의 설레임은 더욱 큽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도 그랬듯이 우리 사회와 우리들 하나하나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 춘천교구는 바야흐로 일흔 돌을 맞게 됩니다. 다가오는 부활시기가 그 은혜로운 때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우리가 어쩌면 너무나 당연시하는 좋고 고마운 일도 많고 많았습니다. 그런 반면, 밖으로는 인간이 벌이고 있는 참혹한 전란과 또 경악할 해일·지진 등 자연 대재난이 무수한 희생자를 내고 있는데 더하여 걷잡을 수 없는 금융 대란에 전 세계가 혹독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경제·사회적 파탄과 혼란으로 너무나 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암울한 곤경에 빠져 힘겨워 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세상 안에서 주 예수님의 자비를 믿고 살며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렇게 불러 모으신 신앙 공동체가 곧 교회이고 우리 춘천교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하나하나를 육신의 눈으로 보시기보다 자비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시며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십니다. ‘따라오라’, 즉 ‘나를 본받으라’, 발걸음의 동작으로써가 아니라 생활의 변화로 따라오라. ‘그리스도 안에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거니신 것처럼 거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성 베다 사제의 강론에서)






우리는 인생 항로에서, 솔직히, 얼마나 주님의 이 부르심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물음, 더욱이 신자로서는 그냥 비켜갈 수 없는 물음입니다. 우리 삶의 현실 한가운데에서 나 자신부터도 원하든 않든, 오늘의 세상 돌아가는 물결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어 사실상 주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들고 살 수는 없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거늘, 어찌 남에게, 바로 그런 세상에 대고, 그 말씀이 진실이라고, 정작 살 길이라고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내가 주님 따라 하나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나를 버림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을(요한 12,24) 마음과 힘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뽑아 세우신 분은 바로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바쳐 우리를 부활한 생명으로 살려내신 주님이십니다. 주님과 하나로 머무르면 참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4-5).

하지만, 마음은 있어도 세상살이가 과연 어디 그리 쉽습니까.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씨앗이 마음속에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는 우리들, 온갖 세상 걱정과 유혹과 욕심으로 말씀을 가로 막는 우리들을 주님께서는 연민의 정으로 안타까워하십니다.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다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는냐”(이사 5,3-4). “나는 좋은 포도나무로, 옹골찬 씨앗으로 너를 심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낯선 들포도나무로 변해 버렸느냐”(예레 2,21). 이렇게 애를 태우시면서 우리의 마음밭이 좋은 땅으로 바뀌고 마침내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기를(마르 4,20)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며 촉구하십니다.





이렇듯 자비 지극하신 주님의 마음을 우리는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삶이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시련마저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힘을 그 믿음에서 찾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2-5).





“만군의 주 하느님이시여, 다시 한 번 돌이키시어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지켜주소서. 몸소 굳건히 세우신 이 햇가지를 붙드소서”(시편 80,14-15).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씨를 담아들고 울며 나가는 자, 곡식단을 안고서 노랫소리 흥겹게 돌아오리라”(시편 126,5-6).





일흔이면 그동안 살아온 길을 겸허하고 슬기로이 되돌아보면서 이제껏 입은 주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보은으로 하느님의 참 자녀다운 삶으로써 길이 남을 값진 열매를 다 함께 맺어나갈 때입니다. 그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으니,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루카 6,44 참조). 우리 모두 힘내어 새로운 마음으로 보람찬 내일을 향하여 떨치고 일어납시다.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더없이 비우고 낮추신 하느님 자비의 힘을 굳이 믿고 따릅시다. 자애로우신 성모님께서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늘 돕고 계십니다. 이제 춘천교구의 우리 모두 함께 손잡고 더욱 복음적이고 복된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이런 뜻을 담아 이번 대림시기부터 미사 끝마다 <춘천교구 70주년 기도문>을 정성껏 바치며 주님의 은총을 기구합시다.




2008년 대림절에


               

춘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