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 비로소 눈은 보기 시작한다"
요 근래 몇 차례 많은 비가 오더니 그 무덥던 여름 더위를 씻어 갔는지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한낮의 햇빛은 강하고 햇볕도 따갑지만 어김없이 계절은 또 다른 계절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마치 일상이 그렇듯이 계절도 오고 가는 많은 빛과 어둠을 살아내는 가운데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늘도 점점 높아지고 논에서 벼들도 노랗게 익어 가고 있습니다. 양평도 친환경 농업으로 유명한 곳이라 양평군에 속하는 매월리 논에서도 여름 내내 다양한 논생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괴산에 살 때 하늘지기 꿈터 아이들과 함께 솔뫼농장 유기농 논에서 물자라, 풍년새우, 게아재비, 소금쟁이, 올챙이, 실잠자리, 긴꼬리투구새우 등 다양한 논생물들을 관찰하며 논생물 교육을 했었는데, 괴산을 떠나온 지 십 년이 더 지나 다시 논생물을 만나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친환경으로 열심히 키운 벼와 작물들이 더 건강한 쌀과 작물로 한 해 결실을 맺어 곧 추수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괜히 뿌듯하고 넉넉한 마음이 됩니다.
추수를 기다리는 논. ©남궁영미, 남상대
매월리의 밤은 일찍 시작됩니다. 6시가 지나면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7시 반이 되면 밖은 캄캄한 밤이 됩니다. 그리고 밤에는 집 앞 산을 배경으로 건너편 숲과 밭에서 그리고 마당 안에서 반딧불이의 향연이 벌어집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부러 불을 끄고 창가에 앉아 반딧불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한 시간 남짓 벌어지는 반딧불이의 향연을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 설레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어느 사이에 반딧불이가 하나둘 날아오르며 만들어 내는 향연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어둠 속에 앉아 반딧불이를 보다가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 생명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두울수록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불빛에 가려 미처 보지 못한 혹은 보이지 않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 ‘나 여기 살아 있어요’ 하고 알려 주어 고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갖가지 불빛과 여러 매체 앞에 앉아 밤도 낮처럼 움직이며 쉬 잠들지 못하는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 살면서 자연의 어두운 밤을 다시 만나고 체험하게 되는 것은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본래 “밤은 인간에게 쉬는 시간, 안식을 취하는 시간, 활동을 멈추는 시간, 달과 별을 바라보며 태양이 뜨는 내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간”이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자연의 의미와 자연의 흐름과 자연을 만나는 방법을 회복하는 기분입니다. 자연 안에 있으니 자주 감동하고 감사할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자연 속에 사는 기쁨이겠죠?반딧불이 영상 보기 https://youtube.com/shorts/Igk88YLRVD8?feature=share밤이 밤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전기를 발명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전기 발명으로 해가 진 뒤에도 낮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밤에도 노동을 통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되어 자본 확대 재생산 및 잉여 자본을 창출하게 되었습니다. 수면 시간이 단축되고 수면 시간과 맞바꾼 잉여노동 시간을 얻게 되어 이 시간을 경제 활동 시간으로, 그리고 점차 TV, 인터넷, 스마트 폰 등의 사용을 극대화하면서 건강과 삶의 질서, 자연 질서를 잃게 된 현대인들의 일상은 많은 정보와 부추겨진 속도 속에 생각하는 힘을 잃고 흐릿한 눈과 피곤한 얼굴로 잠이 들고 무거운 몸으로 아침을 맞게 되었습니다. 도시 중심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인들은 자연의 어두운 밤을 체험할 수 없게 되었고 밤을 잃어버렸습니다.현대인들은 빛만이 아니라 어둠을 사랑하고 어둠 안에서 휴식하는 것, 전기 불을 끄는 삶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로한 사회, 가짜 노동에 길들여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질주하는 속도로는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밤의 어둠이 주는 멈춤과 쉼은 비생산적인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돌아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대로 괜찮은 지 스스로 묻고 삶의 방향과 선택들을 해 나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회복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다양한 생명체가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논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수확량과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태계와 충분히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는 삶, 함께 사는 삶, 서로 살리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입니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 빛을 내고 있는 반딧불이를 보며 배우게 되는 것은 잃어버린 밤을 되찾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어두울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은 고요해지고 우리 눈은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삶과 삶의 수단은 분리되지 않고영혼이라는 하나의 원천에서 나온다.삶과 삶의 수단은 모두의미와 목표를 가지고 깊고 즐겁게 사는 일과자신을 넘어서는 더 큰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는느낌을 가지고 사는 일에 관련된 것이다.- 매튜 폭스
남궁영미성심수녀회 수녀<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원문 링크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