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한국 교회가 자발적으로 추가 비용을 내고 ‘녹색 전기’를 사용하는 사회운동을 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회장 이영준)가 6월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후변화와 가톨릭의 역할’을 주제로 연 제23회 가톨릭포럼에서다. 녹색 전기는 풍력ㆍ태양광 등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 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다.
정내권(바오로) 초대 외교통상부 기후변화 대사는 주제 발표에서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를 자유재, 즉 공짜로 취급하는 현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있다”며 “이제 우리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탄소 가격을 지불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와 기업에만 의존해서는 기후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고, 소비자 역시 탄소 배출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정 대사는 탄소 가격을 지불하는 첫 단계로 ‘녹색 전기’ 가격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일반 전기’와 ‘녹색 전기’ 요금을 다르게 책정해 소비자에게 선택지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정 대사는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48%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10년 내 전기 가격을 2배 인상하는 데 찬성하고, 45%는 반대했다. 이처럼 여론이 반반으로 나뉜 상태에서 정부는 전기료 인상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기 어렵다”며 “그럼 찬성하는 48%만 우선 더 높은 가격을 내고 녹색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녹색 전기 가격이 도입되면, 재생에너지 생산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탓에 적자가 누적되는 한국전력공사의 수익성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며 “RE100(2050년까지 사용 전력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캠페인)에 참여하려는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정 대사는 이어 “한 달 동안 녹색 전기를 사용해 전기료를 2배로 낸다고 해도 따져보면 커피 몇 잔 값에 불과하다”며 “절대 크지 않은 비용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녹색 가격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고, 앞장서서 실천할 힘을 가진 주체가 바로 가톨릭교회”라며 “인구의 10%인 신자들이 ‘가톨릭 퍼스트’ 운동을 벌여 모범을 보이면, 사회 전체가 변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개인보다 공동체ㆍ국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이사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활성화가 잘 안 되고 있다고 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했듯 힘 있는 자들의 반대와 사람들의 관심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이가 참여하는 대화가 그 돌파구일 것”이라며 방안으로 ‘시민공동체의 길’을 제시했다.
오 이사는 “시민은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운명의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며 시민공동체가 자발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한 서울 석관동 두산아파트 사례를 제시했다. 두산아파트는 2009년부터 자체적으로 △엘리베이터 전등 밝기 낮추기 △주차장 전등 LED 교체 등 운동을 벌여 성과를 거뒀다. 우리나라 2200만 가구가 이를 본받으면, 500㎿급 석탄발전소 10기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 이사는 미국 뉴욕 주 정부의 ‘기후리더십과 공동체보호법’도 언급했다. 뉴욕 주 시민들이 5년간 노력 끝에 통과시킨 해당 법안은 매년 주 정부 기후 예산의 40%를 기후 약자인 흑인ㆍ라틴계ㆍ저소득층 주민 공동체에 할당하는 내용이다. 오 이사는 “정부는 법ㆍ제도ㆍ예산으로 시민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동호(서울대교구) 신부는 “두 발제의 문제의식을 교회에 적용하면 보편 교회의 절박함과 지역 교회의 무관심으로 표현할 수 있다”며 “그리스도인들은 생태의 전환이 곧 신앙인의 의무임을 알고 환경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