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예측 가능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하느님의 어머니 대교구’ 총대리인 키릴 고르보노프 신부는 스페인어권 가톨릭 매체 ACI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모스크바 시민들의 생각과 현지 교회 상황 등을 전했다. 고르보노프 신부는 러시아 주교회의 대변인도 맡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외부 세계로 흘러나온 러시아 가톨릭교회의 목소리가 거의 없었던 터라 그가 전하는 소식은 주목할만하다.
그는 “사람들이 찾아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 상황을 초래한 이들에 대한 환멸과 분노, 때로는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분노를 토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관점에 따라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친구와 동료, 친척 간에도 갈등이 심한 상태”라며 전쟁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으로 분열돼가는 민심을 전했다.
“가톨릭교회에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결합한 가정이 많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전쟁에 대한 생각이 달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1990년대 소비에트 연방 해체 시기를 경험한 세대는 국가 앞에서 절대적 무력감을 느낍니다. 또한 어떤 형태의 사회적 행동도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측 가능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정교회 국가다. 동방 정교회 지역에서 교세가 가장 크다. 동방 정교회의 상징적, 역사적 중심은 콘스탄티노플(튀르키예 이스탄불)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이 15세기 중반 이슬람 제국 오스만 튀르크에게 함락된 이후 모스크바 총대교구가 서로마와 동로마(콘스탄티노플)를 계승한 ‘제3의 로마’를 자처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1%도 안 된다. ‘하느님의 어머니 대교구’는 러시아에 있는 2개 로마 가톨릭 대교구 중 하나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탄생하고 부활하신 지 2000년이 됐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여전히 서로 죽이는 것 외에 정치적 긴장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실망스럽다”고 한탄했다.
또 “(가톨릭은 교세가 작아) 전쟁과 관련한 대응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여러 본당, 특히 남부에 있는 본당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폭력 종식과 평화 회복을 지향으로 계속 기도하고 있다”며 “일부 기도 단체들도 이런 지향으로 특별 기도를 바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르보노프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년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성모 성심께 봉헌한 사실을 특별히 언급했다. 교황은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3월 25일 “나의 티 없이 깨끗한 성심이 승리할 것”이라는 파티마 성모 메시지를 강조하면서 두 나라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했다.
“교황의 봉헌은 매우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의 눈에 우리(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는 모두 똑같은 당신들의 자녀라는 메시지입니다. 교황은 ‘분쟁은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그 메시지가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또 “항구적 평화는 무력이 아닌 회심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며 “러시아 국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전 세계 사람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 러시아 가톨릭 가톨릭이 정교회 땅이자 공산국가인 러시아에 다시 진출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 해체 시기인 1990년 무렵이다.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만나 가톨릭 교계 제도 설립에 합의했다.
현재 대교구 2개(모스크바ㆍ시베리아 노보시비리스크)와 교구 3개가 있다. 교구 2개는 사실상 폴란드와 독일 등 유럽계 신자들을 위한 사목구다. 신자 수는 러시아 전역을 통틀어 140만 명 정도다. 본당은 약 230개.
교황청이 2002년 러시아에 있는 교황 직할 서리구 4개를 정식 교구로 승격시킬 당시 러시아 정교회 측은 “정교회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라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원문보기: https://news.cpbc.co.kr/article/849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