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과 숭례문 인근에서 ‘924 기후정의행진’이 열려, 주최 측 추산 3만 5천여 명(경찰 추산 1만여 명)이 ‘긴박한 기후위기 대응’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녹색연합, 청소년기후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400여 단체가 참여했고 충북, 제주, 부산 등 지역단위 참가자도 많았다. 기후정의행진은 2019년 처음 열린 후 코로나 19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재개됐는데, “이번 행진은 국내 기후행동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주최 측이 밝혔다. 2019년 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 7000여 명이 참가했다.
3년 만에 재개된 기후행진, 참가자 5배

“전국 각지의 대형 산불로 수많은 생명이 소실되었습니다. 유례없는 폭우는 ‘반지하’라는 사회적 불평등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에서 우리 동료 시민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대형 태풍을 맞아 사망한 11명의 시민들, 쓰러진 나무들과 쓸려나간 비인간 동물들까지 모두가 이 기후재난의 피해자들입니다.”
조경자(49) 가톨릭기후행동 대표는 행진 시작 직전 ‘924 기후정의선언문: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기후정의를 위해 함께 행진하자’를 낭독했다. 선언문은 “지구 생태계의 한계용량까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자원을 추출해 온 종래의 체제는 그 종점에 이르렀다”며 “기후위기를 초래한 선진국과 대기업들이 시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최일선 당사자들이 기후정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본 집회는 오후 3시 무렵 시청역 7번 출구에서 숭례문 앞까지 700미터(m)가 넘는 공간이 꽉 찬 가운데 시작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 7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일자리가 녹고 있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합류해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청소년 등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이 먼저 발언에 나섰다. 김보림(28)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국가와 탄소중독 기업의 구조적 책임이 지워지지 않도록 기후위기의 책임자를 분명히 드러내자”고 말했다.

박용준(62) 한살림생산자연합회 회장은 “농업은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공공적 가치이자 자산인데 기후위기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 당장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의 황분희(75) 부위원장은 “지금 제 몸속에 방사능이 있다”며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핵발전은 위험할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924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황인철(48)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3년 전과 비교해서)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시민사회 안에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관한 인식이 굉장히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기후위기가 발생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풍물공연, 체험 코너 등 축제처럼 즐긴 집회

이에 앞서 오후 1시에 시작된 사전행사는 경기도 의정부시 사회적협동조합 살판의 풍물패 거리 공연 등으로 축제 분위기를 냈다. 다양한 체험 코너도 마련됐다. 불교기후행동은 참가자들이 푸른 연등에 초록 땅을 그려 넣는 ‘지구연등 만들기’ 코너를 운영했다. 정의당은 오후 2시부터 ‘기후 불평등 해소와 정의 실현을 위한 연설회’를 열었다. 심상정, 장혜영, 류호정, 배진교 국회의원이 발언했다. 배 의원은 “울진·삼척의 산불,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과 더위, 115년 만의 폭우가 찾아왔다”며 “경제성장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삼는 탈성장 시대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리 행진은 오후 4시 15분쯤 시작됐다. 주최 측이 가수 레드벨벳의 ‘빨간 맛’,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을 틀자 참가자들이 따라 부르며 행진했다. 풍물패의 소규모 공연도 있었다. 전북 남원에서 가족 다섯 명이 함께 왔다는 김태정(45·교사) 씨는 “세 아이의 아빠인데, 막내가 살아갈 사회가 더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나온 송미린(26) 씨는 “환경을 생각해서 폐지로 피켓을 만들었다”며 ‘10년 뒤에도 살아남자’고 쓴 손팻말을 흔들며 행진했다.

오후 5시 15분에는 ‘다이-인(Die-in)’ 시위가 시작됐다. 다이-인은 참가자들이 행진 중 죽은 듯 땅에 누워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다.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부근에서 사이렌 소리에 맞춰 일제히 뒤로 드러누웠다. 이들은 약 10분 동안 무언의 시위를 이어갔다.

장애인·노동자 등 ‘불평등 체제 바꾸자’ 목소리
이날 집회에서는 다양한 참가자들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여러 의제를 제기했다. 발달장애인인 차한선(53) 활동가는 “기후정의행진은 단순히 현재 기후위기를 벗어나자는 게 아니라 (장애인 소외 등) 불평등한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박혜리(27) 조합원은 “기후가 바뀌면 노동자들이 바로 영향을 받는다”며 기후정의가 노조의 관심사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공공운수노조에는) 특히 외부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통신노동자들은 여름 홍수 때도 야외에서 수리 업무를 하라고 회사에서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오후 6시 30분쯤 행진을 끝내고 시청역과 숭례문 인근에 다시 모인 참가자들은 마지막 순서인 문화제를 이어갔다. 밴드 허클베리핀이 기후위기를 노래한 ‘금성’을 부르며 무대를 채웠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의 한 교사는 “2022년 개정교육과정에 ‘생태전환교육’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는 오후 8시쯤에 모두 끝났다. 경찰은 시청~숭례문 왕복 8차선 도로를 통제하며 집회 공간 확보와 안전한 행진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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