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에서는 이사회와 함께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스터디 데이즈’에서는 “초연결 시대에 고립된 개인, 가짜 뉴스와 신뢰의 위기, 우리 삶의 터전, 지구 지키기” 등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3일간 이어졌으며, ‘국제 언론인 포럼’, ‘국제 청년 포럼’도 열렸다. 이 세션들을 통해 공유된 이야기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 편집자 주
누구나 정보를 수집하고 나눌 수 있지만 동시에 잘못된 정보도 걸러지지 않고 공유되는 세상. 이것이 디지털 문명이 가진 빛과 그림자다. 언론의 차원에서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 선정적이고 자극적 뉴스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발달은 속도와 이윤에 밀려 점점 자정 능력을 잃었고 사실관계를 검증할 시간도 책임도 없는 상황이 됐다.
가짜 뉴스는 뉴스 소비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보도 대상, 당사자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입히며, 어떤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피해 사실이 부풀려지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짜 뉴스에 대한 치료제는 우리 스스로가 진실을 통해 정화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에게 진실이란 분열과 반대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와 모든 이들의 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극명하게 다가오는 가짜 뉴스와 그 폐해는, “예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했다”는 가짜 뉴스와 그로 인한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물론 십자가 죽음은 우리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예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의 군중, 그리고 현대를 사는 대중이 무엇을 위해 거짓을 소비하고 믿고 또 이용하는지 그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도 가짜 뉴스를 소비하는 행위는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과 전쟁, 갈등, 혐오를 부르기도 한다.
‘서울 시그니스 세계 총회’ 두 번째 스터디 섹션은 “가짜 뉴스와 신뢰의 위기”를 주제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와 토론은 익명의 미얀마 수도자, 김민수 신부(서울대교구), 하이메 카릴(칠레), 콘라드 살단하(인도) 등이 맡았고 해설은 튀르키예 출신 귀화 언론인 알파고 시나시 기자가 나섰다.

안전상 이유로 익명으로 발표한 미얀마 수녀는 가짜 뉴스가 심화시킨 미얀마 실상을 알렸다.
“가짜 뉴스는 독자를 기만하고 조장할 의도로 이뤄지는 것이며 그 뿌리는 권력을 향한 갈망입니다. 미얀마에서 가짜 뉴스는 여러 소수민족과 종교 간 갈등, 분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피해가 큰 미얀마에서는 특히 확실한 사실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늘 가족 간에 들은 소식을 확인하고 코멘트의 출처를 확인합니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사이트가 운영되고, 가짜 뉴스 배포를 막는 것과 동시에 식별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성당을 중심으로 어려운 산모들을 지원하는 일을 해 왔다는 이 수도자는 2021년 11월 21일, 블랙먼데이 이후 끔찍한 상황을 맞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권력을 잡은 군사정권은 200여 명의 군인들을 앞세워 산모들을 위한 시설을 폐쇄했고, 공영방송은 이에 대해 의료진들이 테러리스트라고 보도했다면서, “이런 가짜 뉴스의 결과는 사람들이 공익 활동을 하는 의료진마저 믿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인도주의적 활동마저도 중단시켰다”고 호소했다.
또 개인의 안전도 불안한 상황이 생기는데, 정보에 대한 확인 없이 인터넷에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있으며, 아무도 그것에 책임지지 않는다면서, “일상 생활과 신변 안전에 큰 타격을 입고 있으며, 성당과 마을이 공격받고 불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짜 뉴스는 특히 디지털 문해력이 떨어지는 젊은이들 그중에서도 난민과 소수민족들에게 더 큰 희생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언론인은 뉴스의 수호자이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봉사자, 대변인입니다. 이 발표를 통해 소외된 이들을 위한 진정한 가치, 어려운 이들을 위한 진실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복음을 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교회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
언론학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언론과 문화 관련 사목을 해 온 김민수 신부는 이른바 “탈진실” 시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제안했다.
김 신부는 “우리는 엄청난 정보와 파편화된 정보 속에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뉴스, 정보만 접하는 확증 편향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이러한 확증 편향은 가짜 뉴스를 통해 더욱 심화되며 또한 정치인, 기성 언론, 소셜미디어의 삼각편대가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한국 언론은 왜곡, 조작된 뉴스로 신뢰가 실추됐으며, 공공성과 공익성이 상실된 상업화로 치닫고 있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 지표는 5년 연속 최하위”라며,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불신으로 만연됐다는 증거다. 많은 이가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어떤 방법이든 근본 대안은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입니다. 사회적 신뢰를 쌓는 데 종교의 역할이나 활동이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사회적 신뢰의 저장소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갖는 종교는 선한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공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 공공성과 공동선 실현에 기여하는 교회는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가 될 것입니다.”
“잘못된 정보는 우리 존재의 모든 차원을 오염시키고, 우리 삶을 착취한다.”
칠레 언론학자 하이메 카릴 교수는 “잘못된 정보로 우리 삶은 착취당하고 있으며 우리 삶의 시공간과 관계가 포획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현대는 모자이크 사회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만드는 메뉴형 사회 구조가 생성되면서 우리는 늘 성, 젠더, 종교, 영성, 몸과 물질 사이에서 선택하고, 조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구조는 사회적 결속과 인간성, 공동체 등의 개념에 균열을 일으키고 논쟁을 발생시킵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상품화하며,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모든 것은 한 번의 셀카, 좋아요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카릴 교수는 관계성을 없애는 메타버스는 음모와 거짓 뉴스를 만들고 현실을 왜곡하기 안성 맞춤인 공간이라면서, “비판의 중심은 가짜 뉴스가 타인에 대한 불신과 관계 단절을 통해 권력을 다투는 집단 활동이라는 것에 있다. 관계를 재건하는 것은 가짜 뉴스를 퇴치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의 작가이자 교육가인 콘라드 살단하 씨는 “가짜 뉴스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 근원에 대해 봐야 한다”며, “우리가 사는 세상, 경제, 교육, 정부, 직업, 종교 행위 등 모든 것은 가짜이며, 그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인정할 때, 진실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가짜 세상에 살고 있으면 우리는 조작당할 취약성이 커지고, 진실 인식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뉴스뿐 아니라 모든 삶의 분야에서 가짜를 경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진실성을 회복하고 가짜 뉴스가 사라지기를 원한다면 이 엄중한 문제의 근원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살단하 씨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짜라는 것은 이미 그 정도나 상황을 측정하는 기준 자체가 왜곡되고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면서, “삶 전체를 데이터로 축소한다는 것이 문제다. 측정되는 것은 관리되는데, 정작 삶의 질은 측정이 어렵고 (데이터로 축소되는 순간) 간과하게 된다. 내면의 영혼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일례로 가짜 뉴스는 트래픽이나 클릭수와 같은 측정치 때문에 활성화됐다. 클릭수는 광고로 이어지고 결국 기자들은 기사를 통해 시민들, 독자들을 광고주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다. 살단하 씨는 “뉴스라는 측면에서 콘텐츠의 성과(클릭수)보다는 공정성, 진실성, 의미와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단순히 저널리즘의 콘텐츠가 아니라 삶의 콘텐츠를 바꿔야 인간 존중이 살아나고 콘텐츠의 회복도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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