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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할머니 따라 자연스레 기도… 따뜻한 보살핌 속 싹트는 신앙심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22-07-22 조회수 : 169

할머니 따라 자연스레 기도… 따뜻한 보살핌 속 싹트는 신앙심

[조부모와 노인의 날] 신앙의 모범이 된 조부모들


2022.07.24 발행 [1672호]

▲ 외할머니 김신위(가운데)씨와 외손자 임수(왼쪽)군과 임후(오른쪽)군이 활짝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 외할머니 김정자(오른쪽)씨와 외손녀 박소현(왼쪽)양이 함께 놀이를 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2022년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기념 로고.

칠흑 같은 어둠, 성난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등대는 길 잃은 배를 항구로 인도하는 희망의 빛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신앙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준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가 크게 늘었다. 손자녀에게 신앙을 전해주는 조부모의 역할도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다. 제2차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아 손자녀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는 조부모들을 만났다.



서울 수유동본당 김정자(가타리나)


“신앙은 인생의 방향을 찾아주는 나침반이라고 생각해요. 소현이가 신앙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어요.”

서울 강북구 수유동. 김정자(가타리나, 68, 서울 수유동본당)씨가 취재진을 반겼다. 김씨 뒤로는 외손녀 박소현(에스테르, 8)양이 수줍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이 집은 외할머니인 김씨와 외손녀인 박양이 신앙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김씨와 박양이 함께 한 시간은 8년. 박양이 태어나서부터다. “딸이 아이를 키운다고 회사를 그만둔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봐줄 테니 딸에게 하고 싶은 일 하라고 했어요. 딸이 행복하면 제가 행복하고 딸이 불행하면 제가 불행한 것 아니겠어요?” 김씨는 대신 딸에게 조건을 걸었다. 잔소리하지 말 것. 모든 것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했다. 그리고 김씨는 집도 딸이 사는 곳 위층으로 옮겼다. 그때부터 김씨와 박양의 신앙 동행은 시작됐다.

김씨는 박양이 8개월 됐을 때부터 박양을 성당에 데리고 다녔다. “유모차에 기저귀, 우유병 다 갖고 다녔어요. 제가 노인대학 학장을 맡다 보니까 일이 많았거든요. 소현이가 좀 크고 나서는 도시락도 같이 먹었어요. 성당에 소현이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였죠.” 김씨가 성당에 박양을 데리고 다니다 박양은 자연스레 신앙을 접하게 됐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선 가톨릭평화방송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추기경님 나오시면 소현이가 그래요. ‘저 할아버지는 왜 왕관을 쓰고 지팡이를 쥐고 있어?’ 주교님이 나오시면 ‘왜 저 할아버지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어?’ 많이 궁금해하고 질문도 많이 했었죠.”

김씨가 늘 기도하는 모습을 봐서일까. 박양은 자연스레 기도도 하기 시작했다. “제가 식사 기도를 하다가 어느 날 안 할 때가 있으면 소현이가 ‘할머니 기도해야지’ 그래요. 그러면 같이 기도해요. 어느 날은 ‘할머니 나 기도문 외울 수 있어’ 그래서 해보라고 했더니 주님의 기도를 하더라고요.” 김씨는 “소현이가 제가 성당에 가는 것, 기도하는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인 것 같다”며 “억지로 하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양은 이번 어린이날에도 김씨에게 명동성당에 가자고 해서 묵주 팔찌를 어린이날 선물로 받았다.

“소현이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고난이 많을 텐데 그래도 의지할 곳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게 신앙인 것 같아요. 또 소현이가 봉사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박양은 김씨의 환갑을 일주일 앞두고 태어났다. “환갑이 되던 해 잔치를 하자고 했는데 딸이 출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거든요. 잔치는 못 했지만 대신 소현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어요.” 그래서일까. 김씨와 박양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마산교구 거창본당 김신위(레지나
)

경남 거창고등학교에서 14년간 사감으로 근무하던 김신위(레지나, 64, 거창본당)씨는 지난해 정년퇴직을 하고 올해 3월부터 서울에 있는 둘째 딸 집에서 함께 산다. 맞벌이하는 사위와 딸을 대신해 손자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김씨와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동생 임후(4)군을 업고 뛰어다니던 형 임수(8)군이 동생과 함께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일어나 동생을 챙기는 모습이 꽤 의젓하다. 이런 풍경이 익숙한 듯 김씨는 미소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들을 일으키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마음속에서 갈등이 참 많았었어요. 교직을 떠나고 이제 편히 쉬나 했는데, 딸만 넷 키우던 딸 부자한테 손자 형제 육아는 결코 만만치 않았죠.”

김씨는 손자들을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가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신앙과 먹거리다. 코로나19로 본당 활동은 자주 못하더라도 늘 가톨릭평화방송 TV 매일 미사를 틀어놓고 기도하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할머니의 마음을 알았을까. 임수군은 김씨가 기도하고 있으면 어느새 곁에 와 두 손을 모은다. 김씨가 묵주기도를 할 때도 고사리손으로 묵주를 돌려가며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식사 전후 형제는 자연스레 기도를 바친다. 김씨와 취재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알았는지 제일 좋아하는 레고를 만지작거리며 귀를 쫑긋 세우는 임수군. 기자가 “주님의 기도 할 줄 알아?”하고 물으니 막힘없이 주모경을 바친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수는 화장실 가기 전에도 기도하잖아” 하고 놀리는 김씨의 말이 부끄러운지 볼이 빨개지는 손자를 보며 김씨는 말했다. “하느님께서 왜 제게 손자들을 맡기신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손자를 향한 그의 손길에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김씨가 자녀와 손자들에게 이토록 신앙을 전하려는 이유는 뭘까. 아는 언니를 따라 성당에 가서 세례를 받았던 중학생 때만 해도 김씨의 신앙은 이토록 깊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바다에서 파도는 들이닥쳤고, 힘든 순간마다 신앙은 버팀목이 됐다. 김씨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에도 파도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느님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저는 없었기에 아이들도 힘들 때마다 저처럼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겨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의 신앙 교육 덕분인지 임수군은 하느님을 “주변을 모두 살펴보시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성령 강림 대축일 때 마치 하느님께서 내게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며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여생 동안 손자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잘 인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조부모들에게 “힘들다고 여기면 끝도 없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에서 오는 기쁨을 더욱 크게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도재진ㆍ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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