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도구로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을 제시했다. CNS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1월 1일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세상 모든 이에게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해 함께 걸어가자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어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도구로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을 제시했다.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 :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도구’라는 제목의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평화란 무엇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그의 회칙 「모든 형제들」과 「찬미받으소서」,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토대로 작성됐다. 또 담화에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노동하는 인간」의 내용이 인용됐다. 아울러 교황 자신이 파리 평화 포럼과 기후 정상 회담 참가자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을 첨부하기도 했다.
교황의 202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평화’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평화는 전쟁이나 폭력, 갈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평화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 아울러 평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맺는 성령의 열매(갈라 5, 22-23 참조)라고 가르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평화는 단순히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복음의 기쁨」 219항)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자비의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가 제시하는 평화는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적개심을 없애셨고,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콜로 1,20-22 참조), 당신 교회를 인간과 인간이 하나 되고 또한 하느님과 인류가 하나 되는 일치의 성사로 세우셨다. 이에 교회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라고 고백하고, “지상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열매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05항 참조)라고 선언한다.
교황이 해마다 새해 첫날에 발표하는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읽고 이해해야 한다. 해마다 평화를 실현하려는 주제와 방향은 달라도 그 핵심은 평화를 희망하는 선의의 모든 이와 연대해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교황 즉위 후 처음으로 발표한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전 세계가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진정한 길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원칙은 바로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실재가 관념보다 더 중요하다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 이 네 가지 원칙은 모든 이를 통합하고, 모든 것을 육화시키는 복음의 전체성과 완전성을 드러내 준다. 교황은 세계 평화를 향한 네 원칙을 기반으로 2022년 담화에서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세 가지 길을 제안한다. 첫 번째 길은 ‘세대 간 대화’로 평화 건설을 위한 공동 계획을 실현하는 기초이다. 두 번째 길은 ‘교육’으로 평화 건설을 위한 추진력을 제공한다. 세 번째 길은 ‘노동’으로 평화를 건설하고 보장하는 토대이다.
세대 간 대화 - 신뢰와 사랑 쌓아 미래 지향
교황은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등 현재의 위기가 세대 간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인식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이 필요하고, 나이가 더 많은 이들은 젊은이들의 지원, 사랑, 창의력, 활력이 필요하다고 담화에서 강조한다. 교황은 그러면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만약 우리가 이러한 세대 간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현재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으며 거기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전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2018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세대 간 대화를 강조한 바 있다. 교황은 이 권고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각자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동선을 위해 일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한다.(14항 참조)
교황이 세대 간 대화를 강조하는 까닭은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대화가 우리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구성원을 통해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신다고 증언한다. 이 자비는 하느님과의 화해와 인간끼리의 화해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4)라고 요구하신다. 이처럼 저마다 거룩한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낼 때 갈등과 무관심이라는 딱딱하고 굳어 척박해진 땅을 갈아엎고 평화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한다.
교황은 또 세대 간 대화에 있어 무엇보다 “인간 생활의 온전함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하고, 모든 위대한 가치들을 촉진하고 결합해야 할 필요성을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찬미받으소서」 224항 참조)고 강조한다. 교황은 덧붙여 절제되고 겸손하게 대화할 것과 하느님을 배제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교육 - 사랑과 돌봄의 문화 확산
프란치스코 교황은 담화에서 평화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시기에 ‘교육’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교육은 세대 간 대화를 위한 방식을 알려주고 공동선을 위해 전문성과 경험, 기술을 공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어 “교육과 훈련은 통합적 인간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 으뜸 수단이고, 개개인이 더 큰 자유와 책임을 갖도록 하며, 평화를 지키고 증진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황은 무엇보다 ‘돌봄의 문화’를 촉진하는 교육에 국제 사회가 투자할 것을 권고한다. 군비를 축소해 그 자금을 젊은 세대의 교육과 훈련에 투자할 것을 촉구했다.
‘돌봄의 문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231항)에서 사용한 용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돌봄의 문화’라는 용어를 ‘통합적인 인간 발전’과 ‘통합 생태론’, 그리고 ‘사랑의 문명’과 병행해 사용한다. 교회는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게 걸맞은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생활-정치, 경제, 문화-에서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82항)
사랑의 문명, 돌봄의 문화에는 보편 질서 안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간직하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일상의 작은 몸짓들도, 생태계의 작은 존재도 중요하며 더불어 사랑받고 보호돼야 한다. 아울러 일상에서 윤리, 선, 신앙, 정직, 환경 보호 등 착하고 성실한 것이 가치 있음을 교육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있음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의 전갈은 협상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일치가 모든 다양성을 조화시켜 준다는 확신을 선포하는 것이다. 평화는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통합을 창출해 온갖 갈등을 극복한다”(「복음의 기쁨」 230항)면서 돌봄의 문화 확산을 촉구한다.
노동 - 공정한 노동으로 정의 세우고 연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담화에서 “노동은 평화를 건설하고 지키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한다. 교황은 노동의 필요성에 관해 담화에서 “노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에 속하며, 성장과 인간 발전과 개인적 성취의 길”이라고 한다. 교황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일은 세계 전역에서 공동선과 피조물 보호를 지향하는, 온당하고 품위 있는 노동 조건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가톨릭교회는 사회 경제적 문제들은 모든 형태의 연대성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 기업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성과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의 연대성, 국가와 민족들 사이의 연대성 등이 그러하다. 국제적 연대성은 도덕적 차원의 요구이다. 세계 평화는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달려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941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담화에서 “노동은 모든 공동체에서 정의와 연대를 이룩하는 토대”라고 한다.
연대성은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대성이란 말 자체가 조화로운 생활 양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생활 양식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게 한다. 마치 식사를 하기 전 노동을 통해 이 음식을 우리에게 마련해 준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 안에서 가장 궁핍한 이들과 연대하듯이 하느님 현존 안에서 조화로운 생활 양식은 평화를 내면화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조화로운 생활 양식을 통해 평화를 내면화하자’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 대화를 통해 세대 간의 신뢰와 화해를 쌓고, 사랑의 문명과 돌봄의 문화를 촉진하는 교육을 시행하며, 공정한 노동을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고 서로 연대하는 길을 열어가자고 교황은 제안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