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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삶 속에 꽃 피는 시노달리타스, 평신도의 실천에 달려있다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21-11-09 조회수 : 948

삶 속에 꽃 피는 시노달리타스, 평신도의 실천에 달려있다

평신도 주일에 만난 사람 / 서강대 전인교육원 최현순 교수

2021.11.07 발행 [1636호]


▲ 평신도 신학자 최현순 교수는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히 회의만 하자는 게 아니”라며 “삶 속에서 시노달리타스란 말을 알아듣고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은 54차 평신도 주일이다. 올해 평신도 주일은 지난달 제16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시노드)에 이어 한국 교회도 지역 교회별 교구 단계 시노드를 일제히 개막한 후 처음 맞는 주일이다. 교회는 이번 시노드에 평신도ㆍ수도자ㆍ성직자 모두가 마음을 모아 참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앞으로 평신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현재 요구되는 바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평신도 신학자인 서강대 전인교육원 최현순(데레사) 교수의 견해를 들었다. 최 교수는 로마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석사 및 제1,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 속에서 시노달리타스 구현해야
 

“시노달리타스는 한마디로 같이 가자는 목소리입니다. 그동안 같이 가고 싶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실현되지 않았던 거거든요. ‘같이 갑시다’라는 소리가 나온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가 정말 걱정해야 할 일은 그런 소리도 안 나올 때입니다. 그때는 교회가 아무리 함께 가자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평신도들이 안에 있던 것을 끄집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원망이든, 원의(原意)든, 희망이든 다 끄집어내서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공동체 다른 구성원들이 듣고, 또 다른 공동체 구성원도 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소리를 내다보면 답이 보입니다.”
 

10월 말 늦은 오후,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현순 교수는 “‘왜 내 말을 안 들어줘!’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터놓고 말하고 다른 공동체의 소리를 들으면서 시노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1차 바티칸 공의회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예로 들며 “이번 시노달리타스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차 공의회 시기는 교회와 세상이 싸우는 시기였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함께 가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교회가 세상을 밀어내고 단죄하고 배제했습니다. 그 결과는 ‘세상이 우리끼리 가겠다’며 세상이 교회를 떠난 것이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싸우는 시기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과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의식 속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5년 주교 시노드 설립 50주년 기념연설에서 시노달리타스를 강조한 것이 이번 16차 세계 시노드로 확산된 겁니다.”
 

그러면서 “이번 시노드에는 하느님의 백성인 모든 구성원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이미 많은 곳에서 교회는 더 이상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전체 하느님의 백성인 평신도ㆍ수도자ㆍ성직자 모두가 다 주체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구성원도 온전히 수동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 “이런 흐름이 회의로 끝나거나 하나의 트렌드에 그치지 않으려면 신자들의 삶 속에서 시노달리타스가 피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시노드가 열리고 있고 내년까지 계속됩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시노드만 하다 말게 됩니다. 시노달리타스에서 말하는 건 단순히 회의만 하자는 게 아닙니다. 삶 속에서 시노달리타스란 말을 알아듣고 실현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들 안에서 꽃 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신자들 스스로 왜 시노달리타스의 모습대로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며 그래야 본래의 의미대로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어떤 품위를 가졌는지, 어떤 사명을 받았는지, 교회 안에서 얼마나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인지 먼저 잘 알아야 합니다. 가톨릭교회가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언했던 평신도의 정체성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잘 숙지하고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자리에 있는 평신도의 역할
 

특히 신자들이 교회를 다른 인간사회와 동등하게 보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노달리타스는 모든 구성원의 품위와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분명 민주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노달리타스가 민주주의가 아닌 이유는 교회는 여론대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소리를 듣지만 그것은 사람 안에 있는 성령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 공동체인 동시에 하느님이 세운 신적 공동체입니다.” 아울러 “시노달리타스를 의사결정 구조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시노달리타스는 삶에 대한 얘기입니다. 교회는 평신도ㆍ수도자ㆍ성직자가 고유의 방식으로 각자 움직여야 돌아가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몫과 역할이 있습니다. 평신도ㆍ수도자ㆍ성직자가 고유한 방식으로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말씀에 충실함과 은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신자들 스스로 하느님 말씀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기도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하느님과 말씀이 배제된 상태에서의 의사결정은 의회입니다.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건 의회나 다름없습니다. 은사는 시노달리티스적 교회 실현의 토대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백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을 세상에 실현하게 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는 평신도ㆍ수도자ㆍ성직자 모두에게 은사라는 선물을 나눠줬습니다. 그리스도인 치고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최 교수는 시노달리타스와 관련해 자주 도마 위에 오르는 과도한 성직자주의, 권위주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자들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대로 권위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권위는 누르는 것이고 힘을 쓰는 것이고 사람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톨릭교회에서 교계제도는 신적 권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웠고 당신의 고유한 직무를 사제에게 위임했고 거기에 권위를 준 것입니다. 이것을 없애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톨릭교회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지적과 비판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과도한 권위주의와 성직자주의 문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통과 수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개선돼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정당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권위가 행사되는 게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최 박사는 평신도는 성직자ㆍ수도자와 달리 세상에서 맡아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밝혔다. “시대의 표징을 읽는 것은 수도자ㆍ성직자도 할 수 있지만 세상 속에서 세상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평신도만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신도는 교회를 위해 시대의 표징을 읽어야 합니다.”
 

제1·2차 바티칸 공의회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1869년부터 1870년까지 교황 비오 9세가 주관했다. 교황의 신앙적, 도덕적, 교리적 가르침은 오류가 없다는 교황의 교도적 무류성 교리가 반포됐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2년 10월 11일 시작돼 1965년 12월 8일 끝났다. 교황청 개혁 및 교회의 현대화, 신앙의 자유, 세계 평화, 교회 연합과 일치 등이 논의됐다. 이를 계기로 각 주교들의 역할, 각국 주교회의나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해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앙집권적이고 배타적인 제도를 완화했다. 이때부터 라틴어로만 봉헌되던 미사가 자국어로 봉헌되기 시작했다. 또 1517년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개신교를 형제로 인정했고 1054년에 결별했던 동방정교회의 파문을 해제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원문보기: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2545&path=20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