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교회소식

신문방송20세기 최고 신학자 큉의 믿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21-11-08 조회수 : 614

20세기 최고 신학자 큉의 믿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



“‘믿음’은 확정된 교리를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믿음은 인간의 이성·마음·손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 인간의 사유·의향·감정·행위를 포괄하는 어떤 것이다.”

종교계의 최고 지성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세계 신학계 전반에 강력한 파문을 일으킨 한스 큉(1928~2021년)의 믿음은 전통적인 교회· 교리중심적 신앙과 결이 달라 보인다. 그에게 믿음은 맹목적인 게 아니라 ‘이해가능한’ 믿음, 이성에 바탕한 믿음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큉의 신앙고백서 ‘나는 무엇을 믿는가’(분도출판사)는 그가 오랫동안 품고 키워온 궁극의 질문들을 망라한다. 삶의 의미, 믿음의 정체, 하느님 신앙 등 살아오면서 누구나 의문을 가졌을 법한 물음표들을 모두 담고 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무엇을 신뢰할 수 있는가? 무엇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가?란 근원적 물음부터 삶의 기쁨이란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하느님 신앙은 미래가 있는지 등에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또한 삶의 고통과 삶의 기술 등 삶의 여정에서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변화와 혼돈의 시대에 그는 우리를 영적 산악여행으로 이끈다.

큉은 우선 인간의 영적 토대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그는 자신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품었던 회의의 과정을 들려주며, 믿음 이전에 인간 실존에 대한 의문에 납득할 만한 답을 찾는게 우선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냥 믿어야 해”라는 신학자나 교수들의 대답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믿음의 관건은 교의의 형태로 꼴을 갖춘 초자연적 신앙 진리들을 지성적으로 수용하는 일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의 고유한 자아를 그 모든 어두운 면과 함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온갖 무의미를 무릅쓰고 내 삶의 어떤 의미를 긍정할 수 있을까”란 근본적인 물음을 붙잡고 씨름하던 와중에 그는 돌연 삶에 대한 ‘원칙적 신뢰’라는 명료함에 닿는다. 바닥 모를 불신 대신 이 삶, 이 현실에 대한 근본적 신뢰, 긍정적 신뢰를 갖기로 선택·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칙적 신뢰는 논증에 의해 입증되지 않는다. 다만 실행안에서 체험될 뿐이다. 큉은 이 근본적 신뢰가 종교적 믿음이나 하느님 믿음이라는 의미에서의 믿음과 꼭 같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큉은 삶에 대한 고찰을 더 이어가며, 행복의 문제를 짚는다. 돈이나 물건, 약물 등 물질적으로 얻어지는 행복은 신경생물학적으로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 약효가 떨어진 뒤에는 더 심각한 황폐함을 경험한다. 따라서 삶의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재정 상태가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정신적 태도와 활기라는 게 큉의 주장이다.

이성적 태도를 견지하는 그의 믿음은 사물과 자연을 보는 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 예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동물실험도 인간 고통의 치유와 완화라는 멀리 있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피하는 윤리적 선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논쟁거리인 진화론과 관련, 큉은 인류가 10억 년 동안의 진화의 산물이며, DNA와 RNA가 생명체의 구조를 확정한다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진화론이 원초의 우주 대폭발과 함께 비로소 존재하게 된 공간과 시간, 에너지와 물질이 어디서 비롯했는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가 이끄는 영적 산악여행은 ‘하느님 신앙이 미래가 있는가’란 질문에서 절정에 달한다. 큉은 여기서 현대과학의 성과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비판한다. 낙태, 줄기세포 연구, 안락사 같은 공공연한 윤리적 난제들에 있어서도 실제적인 인도적 해결책이 강구돼야 하며, 종교적 광신과 관계없는 세분화되고 과학적으로 확실하고 철학적· 신학적 성찰을 거친 해답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로마 교황청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가톨릭 윤리를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의회에 압력을 행사하려”든다거나 “중세식의 기적물을 승인하고 케케묵은 전설을 역사적 사실로 선포하는 일” 등은 하느님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는 하느님 신앙을 반박하며 종교의 종말을 내세우는 주장들에도 하나하나 답해나간다. 우선, ‘하느님은 인간의 갈망의 투사인가’라는 심리학적 논증과 관련, 그는 하느님 뿐 아니라 어떤 대상도 나 자신을 인식의 대상안에 투사하게 마련이란 점을 강조한다.

종교의 미래와 관련, “인간을 떨어져 나가게 하는 일그러진 얼굴 모습을 거두고, 인간을 불러들이는 우호적인 모습을 보일 때에만 미래가 있다”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현대의 과학적 발견 이후 ‘근대의 하느님 물음에 대한’ 이성적 신학자의 답변이자 신앙고백서로, 큉의 타 종교를 인정하는 종교윤리, 교황의 무류성 비판, 논증가능한 하느님론 등은 논란과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한스 큉 지음,이종한 옮김/분도출판사

meelee@heraldcorp.com


헤럴드경제 원문보기: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110500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