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사무총장에 여성 평신도!
지난 6월 초 독일 뮌헨 대교구장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이 과거 수십 년에 걸친 성직자의 성폭행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편지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고 이를 공개했다. 그 사실 자체로 놀랄 만한 일이려니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교황의 결정도 세계 교회를 출렁이게 할 큰 소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으로 자문 역할을 해온 ‘9인 추기경단’에 속할 뿐 아니라, 2014년 교황청 산하에 ‘교황청 아동보호 위원회’(Pontific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Minors)를 설치하도록 교황을 설득한 인물이며, 더욱이 바티칸도 견제하는 진보적 ‘독일식 교회개혁의 길’(Synodal Path)을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교계 고위성직자이기 때문이다. 교황이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많은 이는 ‘교회개혁을 계속해 나가라는 교황의 사인’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 속사정이 어떤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 추기경이 사임 편지에서 독일 교회를 비롯해 성직자의 성폭력 문제를 교회가 부딪친 ‘출구 없는 막다른 길’(dead end)로 표현한 데서 보이듯 위기의 정도가 절체절명으로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독일발 뉴스로서, 어쩌면 마르크스 추기경 사임을 둘러싼 얘기보다도 더 중요함에도 한국 교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 있다. 지난 2월 춘계총회에서 독일 주교들은 신학과 언론학을 전공한 베아테 길레스(51)를 사무총장에 임명하고 7월 1일부터 공식 업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땅에 떨어진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독일 주교들의 자구책인 측면이 없지 않았겠지만, 평신도 여성 사무총장 임명을 결정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교회개혁과 관련해 상징적인 의미도 크고 또 그를 통해 독일 주교회의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되는 바도 없지 않다. 비슷한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주교시노드 위원회 사무차장으로 나탈리 베카르 수녀(52)를 임명했다. ‘세계 안의 교회’를 근본정신으로 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얘기하는 마당에서 그 세계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의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적잖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제도 교회가 평신도, 특히 여성을 어떻게 대해 왔는가를 깊이 반성하고 통회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여전히 성직자들만의 리그로 남는다면 마르크스 추기경의 말대로 교회는 출구 없는 길에서 주저앉을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정의를 말하기 전에 먼저 정의로워야 한다’('세계정의' 40항)는 제2차 세계주교시노드(1971)의 정신은 교회가 세상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교회의 역사성 회복
다시 공의회 얘기로 돌아가 보자. 현대 가톨릭 사상가 버나드 로너건은 공의회를 ‘교회의 역사성 회복’이라는 간명한 말로 규정했다. 저 높은 하늘에 계신 신이 모든 인간 세상을 지배하고 오직 성직자가 매개하는 제사나 성사를 통해서만 인간과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중세적 세계관과 신학은 공의회의 ‘세상 안의 교회’라는 한마디의 선언을 통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사목헌장'은 이를 가슴 벅찬 언어로 표현한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1항) 이 구절은 단지 ‘교회가 세상에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넘어선다. 교회의 역사성 회복의 시작과 그 방향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이는 공의회와 공의회의 16개 문헌 전체를 바라보는 해석학적 열쇠로 요한 23세와 칼 라너, 로너건의 통찰을 포괄한다. 여기에는 거룩함과 속됨, 교회와 세상, 성직자와 평신도를 이원적으로 나누는 습관적 병폐의 흔적도 없고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이를 실천하는 세상 안의 교회와 세상이 하나임을 천명한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새 성령강림절, 가난한 이의 교회, 세계교회의 시작, 교회의 역사성 회복 등은 덧보탤 것 없이 그 자체로 교회사에서 너무도 중요한 면면이지만 장대한 비전을 담은 이 구절을 넘어서지 못한다.
사실 요한 23세가 ‘교회의 창문을 활짝 열어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게 하자’는 비유적 말로 공의회의 고갱이를 표현했을 때 이미 교회의 역사성 회복은 시작되었다. 아시아에서 마젤란이 필리핀을 파죽지세로 점령하고 토착민들을 수없이 죽이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것이 올해로 꼭 500년이 된다. 더 가깝게는 제주도의 천민 출신 이재수가 프랑스 선교사를 등에 업은 천주교도의 탄압과 정부의 폭정에 못 이겨 봉기한 ‘신축교안’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1) 가톨릭교회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또 아시아와 한국에서 원주민의 피를 흘리게 했던 과오를 깊이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때야 비로소 공의회는 ‘제대로 수용됨’을 넘어 구체적인 역사와 만나 화해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나는 공의회의 발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곧 교회의 이름으로 깊이 성찰하고 역사와 민중 앞에 용서를 청하고 화해에 이르도록 철저한 통회에 나서게 촉구하는 일이야말로 공의회를 아시아와 한국 땅에서 다시 씨뿌리는 일이 될 것이다.
아시아 땅에서 발화된 공의회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총회 '메데인 문헌'(1968)은 각주에 '사목헌장'을 빈번하게 등장시킴으로써 공의회의 흔적을 깊게 아로새겼다. 한편,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와 함께 아시아 주교들이 마닐라에서 처음으로 만나 발표했던 문서에서 분명한 어조로 표현한 ‘가난한 이와의 대화’도 공의회의 ‘가난한 이의 교회’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공의회는 낯선 곳으로 새로운 여정을 하나둘 떠나 그 지역에서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한 세대 가까이 교황청은 아시아 교회가 어떻게 공의회를 받아들였는지 알지 못했다. 사실 그걸 몰랐던 건 아시아 교회와 신자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 주교 시노드’를 위해 바티칸에서 제작한 일종의 준비 질문지인 '의제 개요'를 받고 그것에 대응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서 공의회가 어떻게 아시아 주교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가 드러났다. '의제 개요'와 시노드 전반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인 건 일본 주교들이었다.2) 한마디로 '의제 개요'의 질문들이 “서구 그리스도교의 상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기에 아시아에는 적합하지 않다”면서 질문하는 모양새와 내용이 “(한 기업의) 본사가 지사들의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일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받는다”(248)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시노드에 여성과 ‘대화 전문가’를 참여시키자는 제안과 함께 '의제 개요'에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와 ‘종으로서의 교회’ 이미지가 강조되지 않았다”(249)고 지적했다.
'의제 개요'와 바티칸은 선포를 강조한 반면, 신앙의 증거를 강조하면서 그것의 아시아적 방법론으로 종교문화간 대화를 강조한 것은 아시아 주교들이었다. 이 두 입장 차이는 '의제 개요'부터 본회의, 그리고 시노드가 끝나고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를 둘러싸고도 계속되었다. 인도네시아 주교들은 '의제 개요'가 토착화를 ‘상황을 고려한 신앙의 해석’ 정도로 언급한 점을 개탄하면서, 토착화는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무이한 구세주임을 너무 강조한다면, 종교간 대화도 할 수 없고 그들과의 연대도 불가능하다”(272)고 지적했다. 필리핀 주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에 있어 “증거가 우선”이라며 아시아 주교들과 입장을 따랐다. 널리 알려진 인도 신학자 마이클 아말라도스는 FABC의 정신과 신학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아시아 교회'는 아시아 문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비판을 행하면서 아시아 주교들은 성숙한 아시아 교회론, 그리스도론, 선교론을 개진한 것이었음에도 그러한 신학적 발전이 공의회를 창조적으로 수용해 발화시킨 것임을 의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공의회를 아시아라는 지역 안에서 꽃피워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록 아시아 주교 시노드 자체는 주교들만의 자리였지만, 그 과정은 평신도를 아우르는 아시아 전체 ‘하느님 백성’의 응답이었으며 이는 분명 공의회의 창조적 발화라고 할 수 있다.
1) 김영호, '성찰과 반성 제주 신축교안 120년 ‘화해의 탑 건립 추진’', <제주의 소리>, 2020.11.22. 참조. 신축교안 관련해 2003년 전임 교구장이 도민에게 사과한 데 이어 18년 만에 이 문제를 다시 다루게 되는 셈이다.
2) 토마스 폭스, "아시아의 성령강림-교회의 새로운 존재양식",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2019, 243-298. 이후 인용처는 본문 괄호의 쪽수 참조.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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