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평신도, 그리고 공동합의성
지난 5월 중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동합의성’을 주제로 하는 세계주교 시노드를 1년 뒤로 늦추는 대신, 2022년 10월부터 각국 교구 시노드, 대륙별 시노드, 세계주교시노드의 절차를 마련해 명실공히 ‘아래로부터의 시노드’라는 큰 그림을 다시 제시했다. 10여 년에 걸친 프란치스코 교황직의 종합이자 ‘교회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해 온 크고 작은 변화의 총결산이 될 전망이다. 그 가운데서도 교구 단위 및 나라별 시노드를 제안한 데서 보이듯 ‘하느님 백성’, 특히 평신도를 의사결정에 어떻게 참여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프란치스코의 교횡직 동안 여러 시노드가 있었지만 적극적인 참가보다는 본당 신자는 물론이고 사제조차 어떤 주제로 시노드가 열리고 있는지 제대로 알리지도 않아 모르는 상태에서, 교황청이 요구한 의견수렴 절차는 생략하고 이를 각 교구에서 한 부서나 직원이 담당하게 하여 처리해버린 ‘전력’이 있는 한국 천주교회 당국은1) 이를 깊이 반성하고 진정한 의미의 친교와 평등의 교회를 만들 좋은 기회라고도 보인다. 나는 위 부제에서도 보이듯이 ‘공의회, 평신도, 공동합의성’을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회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시노드가 개최되는 시점까지 이와 관련한 칼럼을 주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다. 이 글은 그 시작으로서 몇 번에 걸쳐서 공의회와 평신도의 정체성을, 여러 면에서 ‘혼돈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묻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종내에는 왜 ‘시노드가 주교들의 리그’만이 아니라 전체 하느님 백성이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며 함께 실천하는 과정이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새 성령강림절’과 ‘가난한 이의 교회’
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이 공의회를 “새 성령강림절New Pentecost”이라고 부른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해방신학보다 앞서 “가난한 이의 교회”를 발설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가난한 이의 교회는 라틴아메리카주교회의CELAM 제2차 메데인 총회(1968)에서 강조되고, 이후 해방신학에서 정식화한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에 바탕이 되었다. 또 아시아 주교들의 협의기구인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1차 총회(1974)에서 공식화한 삼중대화, 곧 가난한 이들의 대화를 비롯해 다양한 종교문화 전통과의 대화로 아시아 땅에서도 발화되었다. 교회의 기원이 성령강림절에 있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공의회는 교회의 ‘재창립’이라는 문자적 함의를 담고 있는 ‘새로운’ 성령강림절로서 양보할 수 없는 상징성과 중요성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공의회는 대다수 교회 성원에게 교회사에 있어 일종의 ‘변곡점’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런 해석과는 대조적으로 과거 공의회들과의 ‘계속성’을 더 강조함으로써 공의회 성격을 둘러싸고 서구 성직자와 신학자 사이에 ‘연속-불연속continuity-discontinuity’ 논쟁이 불붙기도 했다. 여기에 ‘전통’을 고수하려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공의회 개혁을 반대했던 르페브르 대주교의 파문을 철회하고 라틴어 미사를 공식 복원한 상황이 더해지면서 가속화했다. 그러나 아시아 주교와 신학자는 상대적으로 이 논쟁에 관심이 없었다. 그 까닭은 이들이 연속-불연속 논쟁보다는 공의회의 제안을 어떻게 구체적인 다종교적, 다문화적 삶의 현장으로 가져와 이를 살아낼 것인가 하는 현실 문제가 더 절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성령강림절은 세계 민족의 언어가 서로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하나된 날이며, 새 성령강림절로서 공의회는 이런 다양성 속의 일치를 복원해 냈다. 이는 '비그리스도교 선언'과 '선교 교령'을 비롯해 '교회 헌장'과 '사목 헌장'에서 제시된 신학적 비전, 곧 수많은 길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그리스도교의 울타리를 넘고 모든 장벽을 초월해 전 인류를 향해 열려 있음을 선포한 데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하느님 백성’으로서 평신도 신학의 자리이자 내용은 그 수많은 민족과 언어처럼 이 세상 전체와 모든 이의 삶 하나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 교회를 향한 시작’
‘공의회 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칼 라너는 좀 더 포용적이고 포괄주의적인 태도로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선의의 모든 이를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사실 16개 공의회 문헌이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를 갖는 주교들의 신학적 논쟁과 타협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공의회 참가자 다수에게 이런 포괄주의적 관점이나 태도로 공의회를 규정하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할 만한 것이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만큼 공의회의 성격을 간결하게 전달해 주는 또 다른 문구로 진정한 ‘세계 교회world church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라너의 이 말은 후대 신학자들 사이에 상반된 해석을 불러왔다. 하나는 세계 교회의 시작이 과연 ‘어떤 교회를 말하는 것인가’라는 교회의 본성을 묻는 비판적 물음으로서, 곧 그 세계 교회가 여전히 ‘서구 중심’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보는 반면, 다른 입장은 라너 자신이 공의회를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이는 단지 서구 교회가 아니라 제3세계 교회도 포함한다는 해석이다. 또한 라너가 ‘해방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스가 "해방신학"을 썼을 때, 공의회의 지역적 구체화이자 발화로서 이를 직접 축하했다는 데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그리스도인에게는 상이한 이 두 해석과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시아의 그리스도교 전통이 상당히 오래되었고 공의회가 그 전통을 다시 살려낼 발판이 되었다는 점이다. 곧 당나라 시대에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 교회가 ‘경교景敎’라는 토착적 교회로서 중국 땅에 상당한 교세를 확장했고, 인도에서는 약 50여 개 교구에 속한 동방 가톨릭 교회, 더 정확하게는 시리안 계통의 시로 말라바르Syro-Malabar 교회와 시로 말란카라Syro-Malankara 교회 신도들이 예수 당시에 이미 토마스 사도가 인도에 와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고 믿고 있는, 그만큼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된 점이다. 이런 오랜 아시아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이 다양성과 지역성을 강조한 공의회를 통해 다시 발굴되고 기억됨으로써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의 성숙함을 촉진할 수 있게 된 것이야말로, 아시아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잊혀진 신앙의 보물을 다시 찾은 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평신도의 눈은 공의회를 통해 가톨릭 교회가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의 지극한 다문화, 다종교 전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끌어안음으로써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에 공헌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비록 공의회 당시에는 교의적 논쟁에 대해 아시아 주교들이 주목할 만한 공헌을 하지 못했지만, 30여 년 뒤에 열린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서는 공의회가 불러온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보게 된다. (계속)
1) 한수진, '교황청 가정생활 실태조사, 한국에선 어떻게 진행됐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4.01.13.
2) Karl Rahner, “Towards Fundamental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Vatican II”, Theological Studies, Vol. 40 issue 4, 1979.12. 719-720.
3) Aloysius Pieris, Give Vatican II a Chance, Tulana Research Center, 2010, 63-73.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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