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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거리의 노숙인 1만5천명 만나니 한평생 지났네요"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21-06-28 조회수 : 630

"거리의 노숙인 1만5천명 만나니 한평생 지났네요"

48년 무료진료 봉사활동…고영초 건국대 의대 교수

1973년 서울의대 시절부터
월 2~3회 지친 몸 이끌고
노숙인·외국인 노동자 진료
공로 인정받아 LG의인상



48년 동안 병원과 판자촌 등지를 오가며 진료 봉사활동을 해온 고영초 건국대 신경외과 교수. [사진 제공 = 건국대병원]

사진설명48년 동안 병원과 판자촌 등지를 오가며 진료 봉사활동을 해온 고영초 건국대 신경외과 교수. [사진 제공 = 건국대병원]



고영초 건국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68·사진)는 이날도 수술실에서 나온 직후였다. "교모세포종 환자였어요. 네 시간 정도 걸렸네요."

신경외과 전공의인 그는 이날처럼 굵직한 수술이 끝난 날에도 무료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48년째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중증질환을 앓는 거리의 노숙인, 기댈 곳 없는 외국인 근로자를 만났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10년, 20년쯤 봉사하면 몸이 먼저 봉사하길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때는 1973년. 서울대 의대 본과생이었던 고영초 교수는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하며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무허가 판자촌에서 환자들을 진료한 것. 지금은 금천구 전진상의원, 영등포구 요셉의원, 성북구 라파엘클리닉을 월 2~3회 정기적으로 오간다. 이제 횟수를 많이 줄였지만 고 교수가 만난 환자 수를 역산하면 1만5000명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요? 너무 많죠. 세 살 때 방사선 치료를 받은 아이가 기억이 나네요. 24세에 재발해 찾아왔을 때는 뇌압으로 실명된 상태였어요. 치료는 잘됐지만 눈을 잃었어요. 이후 맹인 안마사가 됐는데 절 찾아와 안마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도 이제 나이가 오십이에요. 긴 인연이지요."

서른 시간이 넘는 수술로 결국 살려낸 노숙인 환자, 소식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찾아갔다가 의식불명상태를 발견해 직접 집도한 수두증 환자 등 사연도 갖가지다. "퇴원 무렵 '아버지 같다'며 말할 때 가장 기분이 좋죠. 봉사자들과 함께 일하고 진료하다 보면 피곤함이 씻은 듯 사라져요. 그 즐거움이 봉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고 교수는 유년 시절 가톨릭 신부가 되려 했었다. 4·19 혁명 당시 국민학생 2학년이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데모하는 학생들 틈에 섞이게 됐다. 제기동에서부터 걸어 정신을 차리니 삼각지였다. 계엄령이 떨어지자 한 대학생이 어린 그를 하숙집에 데려가 하룻밤을 먹이고 재워줬단다.

"부모님이 절 찾아 영안실까지 가셨다더군요. 이후 '두 번째 삶'이라 생각해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톨릭신학대 부설학교인 성신중·고교에 진학해 라틴어를 배우기도 했어요. 고2 때 마음이 바뀌어 일반고로 편입했는데, 마음을 치유하는 신부 대신 몸을 고치는 의사가 되려 했습니다."

의사의 길은 예견된 소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옛 학교에서 배운 라틴어는 의학용어 공부에 큰 도움을 줬다. '달란트'를 많이 받은 삶이라고 그는 소회한다. "성직자 소명 대신 의사 공부를 택했잖아요. 하느님께 덜 미안하려면 소외받는 분들을 향한 봉사가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달란트를 많이 받았으니 제가 더 노력해야죠. 이제 하느님께 '덜' 미안해도 될까요.(웃음)"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게 받은 공로패 두 점이 그의 연구실에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1991년, 하나는 2003년에 받았다. "김 추기경님께 아이들과 세배하러 가고 좋은 추억 만들면서 힘든 마음은 다 보상받았어요. 김중호 신부님, 선우경식 원장님, 김혜경 선생님 그리고 국제형제회(AFI) 식구 등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48년에 걸친 의료봉사의 공을 인정받아 그는 최근 LG의인상을 수상했다. "봉사는 평생 해나갈 것"이라고 그는 다짐했다.

"종교적인 삶이란 '태어난 목적'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겠지요. 누군가가 열악한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기여하는 것, 그것이 제 삶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봉사할게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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